‘한 번의 실패’가 패가망신이 되지 않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인내’라는 선물
겨울철, 루돌프가 이끄는 썰매를 타고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하는 산타의 여정은 겉보기엔 늘 완벽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완벽한 하룻밤을 위해 요정들은 일 년 내내 수만 번 장난감을 고치고, 루돌프는 밤하늘을 나는 연습을 하며 수없이 땅으로 고꾸라집니다.
만약 단 한 번의 비행 실패로 루돌프에게 다시는 썰매를 끌 수 없는 벌이 내려졌다면, 오늘날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혁신 창업 생태계는, 단 한 번의 미끄러짐도 허용하지 않는 차가운 겨울바닥과 닮아 있습니다.
최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열린 ‘2026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에서 이정동 서울대 교수가 던진 화두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그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스타트업들이 맞닥뜨리는 치명적인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는, 위험을 함께 감당하고 기다려줄 수 있는 ‘인내자본(Patient Capital)’ 인프라가 반드시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 없는 사막을 걷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
과거 우리는 정부의 주도적인 지원과 은행의 장기 대출이라는 그 시절의 ‘인내자본’을 발판 삼아 반도체와 자동차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안전만을 추구하는 금융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위험을 감내하던 따뜻한 자본의 손길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현재 국내 벤처 투자의 유효 기간은 길어야 7년 남짓.
세상에 없던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딥테크’ 기업들이 꽃을 피우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성공의 뒤에는 언제나 수많은 실패가 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창업이란, 어쩌면 ‘성공하지 못하면 패가망신의 저주가 내리는’ 외줄 타기와 같습니다.
실패에 대한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지도에 없는 사막을 탐험하려 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몇 푼의 지원금을 쥐여주고 ‘혁신하라’고 등을 떠미는 것은 무늬만 혁신일 뿐,
창조적 혁신의 본질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국의 ‘인내자본공사(British Patient Capital)’처럼,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15년 이상 장기적으로 기업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줄
든든한 ‘국민성장펀드’의 기관화입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긴 안목’의 기적
기술적인 성공이 곧바로 시장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미국 TEDCO의 사례처럼 초기 스타트업이 무너지는 건 아이디어가 나빠서가 아니라,
시장의 요구에 맞춰 변신(Pivot)할 시간을 벌지 못하고 고립되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낙오자의 낙인이 아니라, 더 완벽한 성공으로 가기 위한 ‘축적의 시간’입니다.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디딤돌만 있다면,
한 번의 실패는 다음 단계를 향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올해 국가 R&D 예산이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 5,000억 원으로 편성되었다고 합니다.
양적인 기반이 마련된 지금, 이제는 ‘질적인 패러다임’을 바꿀 때입니다.
예산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본에 ‘인내와 신뢰’라는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 일입니다.
산타의 보따리 속에서 나오는 가장 위대한 선물은 눈앞의 장난감이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해보렴" 하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믿음’일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도형 혁신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이제 우리 금융과 사회 생태계가 기업가들에게
‘긴 안목의 인내’라는 가장 따뜻한 선물을 건넬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