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 | 인생 2막에 피어난 꽃이 아름답다

“늦게 핀 꽃이 아름답다”
예순다섯에 교수의 꿈을 이룬 정일영, 인생에는 저마다의 개화기가 있다
꽃은 모두 같은 날 피지 않는다. 성급한 봄볕에 일찍 얼굴을 내미는 꽃이 있는가 하면, 긴 비와 거센 바람을 견디고 계절이 한참 깊어진 뒤에야 조용히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늦게 핀 꽃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문다. 그 꽃이 피어나기까지 견뎌야 했던 시간과 기다림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예순다섯에 마침내 교수의 꿈을 이룬 정일영 인하대 초빙교수의 삶도 그런 한 송이 꽃을 닮았다. 프랑스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대학 강단에 섰지만, 그가 꿈꾸었던 교수의 자리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송과 온라인 강의를 비롯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여러 자리에서 프랑스어와 학문의 끈을 놓지 않았다.
30년 가까운 기다림은 결코 짧지 않다. 누군가는 중간에서 다른 길을 선택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제는 늦었다’며 꿈을 접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강단을 지켰다. 화려한 성공이 보이지 않는 날에도 공부했고, 학생들을 만났으며,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오래 붙들었다.
그러던 그의 인생에 예순을 훌쩍 넘긴 뒤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젊은 세대와 만나는 콘텐츠를 통해 특유의 유쾌하고 솔직한 강의가 알려졌고, 오랜 시간 쌓아온 실력과 경험은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6년, 마침내 오랫동안 바라왔던 모교 인하대 초빙교수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그가 청년들에게 건네는 말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멀리 보지 말고 선택은 좁게 집중은 길게 하라.”
우리는 너무 멀리 바라보다가 오늘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남보다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이것저것 손을 뻗다가 정작 자신의 한 가지를 깊게 만들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일영 교수의 삶은 반대편을 가리킨다. 길을 너무 넓게 벌리지 말고 자신이 선택한 한 길을 오래 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이 그 사람의 깊이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인생의 시간표’가 있다. 서른에는 자리를 잡아야 하고, 마흔에는 성공해야 하며, 예순이 넘으면 새로운 꿈보다는 정리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생이 정말 그렇게 단순한 시간표대로 흘러갈까. 어떤 사람의 전성기는 스물다섯에 오고, 어떤 사람은 마흔에 자신의 길을 발견하며, 또 어떤 사람은 예순이 넘어서야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계절을 맞는다.
중요한 것은 언제 피었느냐가 아니라 끝내 피어났느냐인지도 모른다.
늦게 피는 꽃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동안 땅속에서 뿌리를 내렸고, 수많은 계절을 견디며 자신만의 때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늦게 핀 꽃에는 젊은 날의 화려함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기다림의 깊이, 실패를 견딘 단단함, 그리고 쉽게 시들지 않는 삶의 향기가 있다.
예순다섯의 봄, 정일영 교수의 꽃은 이제 막 피기 시작했다.
혹시 오늘 자신의 삶이 남들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인생을 한번 떠올려보아도 좋겠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해서 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뿌리가 살아 있는 한 꽃은 언젠가 핀다.
인생에는 정해진 개화기가 없다.
그러니 조금 늦어도 괜찮다.
늦게 핀 꽃은 오래 기다린 만큼 더 깊은 향기를 품고 있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