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진단

인플레이션, 모두에게 고통인가 - 한국 경제의 현실과 전망
고물가 시대가 일상화되며 ‘인플레는 모두에게 불리하다’는 통념이 자리 잡았지만,
경제학적으로 인플레이션은 계층과 산업에 따라 상반된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현상이다.
다만 최근 한국 경제가 겪는 인플레는 명백히 체감 고통을 넓게 퍼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경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소비자 입장에서 인플레이션은 생활비 압박으로 직결된다.
식비·주거비·교통비 등 필수지출이 고정적인 서민·중산층에겐 상승한 물가가 고스란히 생활 충격으로 돌아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적한 ‘체감 인플레’가 공식 수치보다 훨씬 높게 인식되는 이유도, 국민 다수가 꾸준히 소비하는 품목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진 장바구니 물가 상승, 학원비와 월세 상승은 가구의 실질소득을 잠식하며 중장년층과 청년층 모두에게 부담을 키웠다.
그러나 모든 경제 주체가 인플레로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부채가 많은 기업이나 가계는 인플레 국면에서 실질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를 얻는다.
고정금리로 대출을 보유한 가구는 향후 소득이 명목상으로 증가할 경우 상대적으로 대출 부담이 가벼워지는 구조다.
또한 재고자산을 많이 보유한 기업, 또는 가격 전가력이 높은 기업은 물가 상승기에 오히려 이익이 확대되기도 한다. 글로벌 원자재 기업이나 플랫폼 산업이 인플레기에 견조한 실적을 유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의 인플레이션이 수요 주도형 보다다 비용 상승형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국제 공급망 불안, 에너지 가격 변동성, 농산물·임대료 상승 등이 맞물리며 생산비를 끌어올린 결과가 소비자 물가로 전가되는 방식이다.
이는 서민층 소비를 위축시키고 기업의 투자여력을 약화시키며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위험이 크다. 특히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는 원자재·에너지 가격에 취약해 비용발 인플레 국면에서 구조적 압박을 받기 쉽다.
이러한 인플레의 확산은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고소득층은 소비 구조가 다변화되어 물가 상승에 덜 민감하지만, 저소득층은 지출의 대부분이 필수품에 집중돼 인플레 충격을 더 크게 받는다.
또한 금리 인상기가 겹치면 대출의존도가 높은 청년·영세 자영업자층은 이중고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최근 자영업 폐업 증가, 청년층 소비 위축은 인플레·고금리·성장 둔화라는 ‘삼중고’가 현실화된 단면을 보여준다.
전망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미국·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금리정책의 방향을 조정하고 있고, 공급망 불안도 점차 완화되고 있지만, 지정학 변수와 에너지 시장 변동성이 잠재 불씨로 남아 있다.
한국 역시 서비스 물가와 임대료 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있어 단기간에 2%대 안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전문가들은 향후 한국 경제가 고물가·저성장의 장기화 위험을 피하려면
▲필수품·서민 생계비 안정 정책 강화 ▲에너지 효율 구조 전환 ▲중소기업·자영업자의 비용 부담 완화 ▲주거·금융 시장의 구조적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구조 전체를 흔드는 경제 신호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고통받는가’가 아니라,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사회 전체가 어떻게 완화하고 미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