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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생 다시 돌아온다

이성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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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에 북적이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
노량진의 부활은 단순히 학원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과 사회가 제공하는 선택지의 폭을 보여주는 지표다.

노량진에 공시생이 돌아온다

 

다시 불이 켜진 학원가 — 공무원 시험 준비생 증가의 배경과 향후 전망


 

한동안 조용했던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 다시 불이 켜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급감했던 공무원 시험 준비생, 이른바 ‘공시생’이 최근 다시 증가세를 보이면서다. 

빈 강의실이 늘어나던 학원가에는 신규 강좌가 개설되고, 고시원과 원룸 문의도 눈에 띄게 늘었다. ‘노량진이 예전 같지는 않아도,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라는 말이 학원 관계자들 사이에서 나온다.

 

다시 늘어나는 공시생 — 왜 지금인가

 

공시생 증가의 배경에는 불안정한 노동시장 현실이 있다. 고용의 질이 악화되고, 대기업·공기업 채용 문턱은 더 높아진 반면 중소기업 취업은 임금과 안정성 측면에서 매력을 잃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경기 둔화와 채용 축소가 맞물리며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선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수험생의 비중이 늘어난 점이 눈에 띈다. 취업 이후 다시 시험 준비에 뛰어드는 이른바 ‘회귀형 공시생’도 적지 않다. 한 학원 관계자는 ‘예전엔 대학 졸업 직후 공시 준비에 들어오는 학생이 많았다면, 요즘은 회사 경험을 한 뒤 안정성을 이유로 돌아오는 경우가 늘었다’고 전했다.


 

불안정한 미래보다 확실한 선택

 

노량진에서 9급 일반행정직을 준비 중인 김모(29) 씨는 중소기업 근무 경력을 뒤로하고 다시 수험서 앞에 앉았다. 그는 회사에서 야근과 불확실한 미래를 겪으면서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연봉은 크지 않더라도 예측 가능한 삶을 선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험생 박모(26) 씨는 주변에서 공무원 준비를 말리기도 했지만, 취업 준비를 하며 느낀 좌절감이 더 컸다며  ‘적어도 노력의 방향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시험 준비가 오히려 마음을 안정시킨다’고 털어놨다.


 

안정 선호 심리의 귀환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유행이 아닌 구조적 신호로 해석한다.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공무원 선호는 경기 변동과 밀접하게 연동된다며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안정적인 공공부문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다만 과거와 같은 ‘묻지마 공시 열풍’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준비 기간을 짧게 설정하거나, 특정 직렬·지역에 집중하는 전략형 수험생이 늘었다는 것이다. 온라인 강의와 AI 학습 도구 확산으로 노량진에 상주하지 않고도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점 역시 예전과는 다른 풍경이다.
 

장기화는 미지수 — 관건은 채용 규모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공무원 채용 인원이 과거보다 줄어든 상황에서 경쟁률이 다시 높아질 경우, 수험생 이탈이 재차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공무원 시험 준비가 늘어나는 현상은 청년들이 체감하는 사회 안전망의 약화를 반영한다며  ‘공공부문 채용 확대만이 아니라 민간 일자리의 질 개선이 병행되지 않으면 이 흐름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서는 노량진 — 청년들의 선택지
 

노량진의 부활은 단순히 학원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과 사회가 제공하는 선택지의 폭을 보여주는 지표다. 

공무원 시험을 향한 발걸음이 다시 늘어난 지금, 그 이면에 담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안정적인 삶을 선택하는 것이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사회가 던진 숙제인가.’ 노량진의 불빛은 그 질문을 오늘도 묵묵히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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