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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100주년 특별기획 2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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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과 우리 글을 지켜낸 사람들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것은 단어 몇 개가 아니었다. 한 민족이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언어였다.

한글날 100주년 특별기획 ②

 

가갸날에서 한글날까지

우리말과 글을 지켜낸 사람들

 

편집자주 | 1926년 시작된 ‘가갸날’이 2026년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한글날의 역사는 단순한 기념일의 역사가 아닙니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도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치열한 노력과 희생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산타뉴스는 한글날 100주년 특별기획 두 번째 순서로 가갸날의 탄생과 한글을 지켜낸 사람들의 발자취를 돌아봅니다.

 

나라를 잃고도 말을 지키다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은 영토와 주권만을 잃는 일이 아니다. 한 민족이 오랫동안 사용해 온 말과 글, 역사와 기억까지 흔들리는 일이다.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도 거센 시련을 겪었다. 식민 통치가 강화되면서 조선어 교육은 점차 위축됐고, 우리말을 자유롭게 배우고 사용하는 환경도 좁아졌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지키려는 움직임은 더욱 절실해졌다.

 

그 중심에 조선어연구회가 있었다. 우리말을 연구하고 한글을 널리 보급하려 했던 학자들은 문자가 곧 민족의 정신과 기억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잃으면 생각을 잃고, 글을 잃으면 한 민족이 살아온 흔적마저 희미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26년, 첫 ‘가갸날’

 

1926년 음력 9월 29일. 조선어연구회와 신민사 관계자들은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오늘날 한글날의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첫 가갸날이었다.

 

당시에는 ‘한글’이라는 이름이 지금처럼 널리 정착되지 않았기에 한글을 배울 때 익히던 ‘가갸거겨’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후 한글이라는 명칭이 보편화되면서 1928년부터 한글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나라를 빼앗긴 상황에서 우리 글자를 기념하는 날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단순한 문화행사가 아니라 우리말과 글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사전을 만들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

 

우리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사전 편찬으로 이어졌다. 조선어학회 학자들은 전국에서 우리말을 모으고 뜻과 쓰임을 정리하며 사전을 만들었다. 사라질지 모르는 말을 기록해 다음 세대에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 관계자들을 대거 체포했다.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많은 학자가 혹독한 고초를 겪었고 이윤재와 한징은 옥중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단어 몇 개가 아니었다. 한 민족이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언어였다. 그렇게 지켜낸 말과 글은 광복 이후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우리가 이어가야 할 백 년

 

광복 이후 한글날은 국가적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26년, 첫 가갸날을 기념한 지 100년을 맞았다.

 

지난 100년 동안 한글의 운명은 크게 달라졌다.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글자가 이제 세계 곳곳에서 배우는 문자가 됐다. 한국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한국 문학을 원문으로 읽기 위해 우리말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한글날 100주년의 진정한 의미는 세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데만 있지 않다. 오늘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읽고 쓰는 이 글자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평생을 바쳤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데 있다.

 

말에는 한 시대의 삶이 쌓이고 글에는 한 민족의 기억이 남는다. 1926년 가갸날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마음도 결국 하나였다. 우리말과 글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주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지켜낸 백 년 위에 우리가 서 있다.

그리고 이제 다음 백 년의 한글을 지켜낼 사람은 바로 우리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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