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사회공헌 1조 8,934억 원

사랑의 손길이 닿는다
은행권의 사회공헌 규모가 1조 8,934억 원을 돌파했다.
단일 산업군이 한 해 동안 지역과 사회에 이만한 자원을 투입하는 일은 흔치 않다. 숫자만 놓고 보면 성과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장면이다.
러나 이 거대한 규모만큼,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돈은 누구에게 닿았으며, 사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가.
은행의 사회공헌은 오랫동안 기부·장학·체육·문화 후원 등을 두루 아우르는 좋은 일의 목록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흐름은 조금 다르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는 지역사회와 공익 부문이다.
약 60%를 넘는 예산이 지방자치단체 출연, 취약계층 지원, 신용보증기금 특별출연 등에 쓰였다. 이는 은행이 단순한 후원자를 넘어, 지역경제의 촉매로 역할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민금융 지원의 중요성도 더욱 커졌다.
새희망홀씨, 햇살론15, 햇살론뱅크 등 상생금융은 한 해 50만 건이 넘는 서민·청년의 금융 안전판으로 작동했다. 소득이 낮아도, 신용이 낮아도, 누군가는 다시 일어설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금융의 본질을 다시 붙잡는 영역이다.
숫자만 보면 5조 원이 넘는 자금이 흘러갔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개인의 사연과 재기가 숨어 있다. 이것은 실적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안정망이다.
문화·예술·교육 분야의 지원도 여전히 은행 사회공헌의 색채를 이룬다. 청소년 금융교육, 대학 발전기금, 지역문화 후원은 미래 세대에게 남기는 은행의 투자다.
만 이 영역은 때로보여주기식 활동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단발성 행사보다 길게 이어지는 양질의 프로그램, 진정성이 담긴 현장의 목소리 통로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은 질문은 남는다.
사회공헌의 총량은 커졌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얼마나 되었을까.
사회공헌 집계 방식이 각 은행의 자율에 맡겨져 있어 휴면예금 출연 등이 공헌으로 계산되는 방식도 여전히 논란이다.
사회공헌이 단순히 숫자로 경쟁하는 종합 점수표가 된다면, 그 본래의 의미는 쉽게 흐려질 수 있다.
이제 은행 사회공헌의 핵심은 얼마나 썼는가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사용됐는가이다.
금융소외 지역의 디지털 약자를 위한 교육, 소상공인의 재기 기회를 넓히는 자금, 청년이 지역에 정착하는 데 필요한 생활 금융 등 현실의 문제를 정교하게 겨냥해야 한다.
은행의 손길이 닿는 순간, 사람들의 삶이 직접적으로 달라지는 변화가 필요하다.
은행은 자본을 굴리는 곳이다.
하지만 사회공헌은 자본이 아니라 신뢰를 쌓는 일이다.
시민으로서 우리가 은행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는 ‘내 삶의 옆자리에 있는 금융’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1조 8,934억 원이라는 거대한 사회공헌의 크기를 넘어, 우리의 일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면 그 숫자는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은행권의 사회공헌이 일시적 홍보가 아닌, 진정한 공동체 회복의 모습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금융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모일 때, 숫자는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