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테일러, 모두가 외면한 에이즈 환자 곁에 가장 먼저 선 할리우드의 전설
![보라색 눈으로 유명한 고전 할리우드 시대의 배우로, 30년 가까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 인기를 누리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다섯 번 후보로 지명되고 그 중 두 번 수상했다. [사진제공 나무위키]](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0712/1783862979144_85295449.jpg)
미국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평생 5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할리우드 황금기를 대표한 배우로 남았다.
그러나 오늘날 그녀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화려한 필모그래피보다, 모두가 외면하던 HIV·에이즈 환자들의 손을 가장 먼저 잡았던 용기 때문이다.
테일러는 아역배우로 데뷔해 성인 연기자로 자연스럽게 성장한 드문 사례였다.
영화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클레오파트라',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등을 통해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이름을 올렸다.
그녀는 타고난 아름다움 때문에 연기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편견과도 오랫동안 싸워야 했다.
연기 수업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뛰어난 집중력과 기억력으로 대부분의 장면을 짧은 촬영만으로 완성하는 배우로도 유명했다.
인생의 방향은 1980년대 들어 크게 달라졌다.
당시 HIV와 에이즈는 병보다 편견이 더 무서웠던 시대였다.
감염인들은 가족과 사회에서 고립됐고, 많은 유명인들조차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를 꺼렸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 침묵을 깨뜨린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1985년 에이즈 연구재단 설립에 참여했고,
이후 미국에이즈연구재단(amfAR)과 자신의 이름을 건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이즈 재단(Elizabeth Taylor AIDS Foundation)을 통해 연구비와 치료 지원, 인권 보호 활동에 앞장섰다.
그녀는 수십 년 동안 모금 행사와 캠페인을 직접 이끌며 수백만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다.
당시 사회적 낙인이 심했던 질병을 위해 세계적인 배우가
자신의 명성과 시간을 내놓은 일은 미국 사회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테일러는 생전 "처음으로 삶의 목적을 찾았다"고 말한 바 있다.
최고의 배우라는 명성보다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자신의 인생을 더 의미 있게 만들었다는 고백이었다.
화려한 삶 뒤에는 끊임없는 고통도 있었다.
어린 시절 승마 사고로 입은 척추 부상은 평생 이어졌고,
진통제 의존과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스스로 재활센터를 찾았다.
당시만 해도 유명인이 중독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그는 이를 숨기지 않았다.
그의 선택은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중독을 부끄러운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확산됐고,
다른 유명인들의 공개 치료에도 영향을 미쳤다.
평생 동안 테일러는 수십 차례 수술을 견뎌야 했다.
척추 질환과 뇌종양, 피부암, 고관절 수술, 심장 질환까지 크고 작은 병마가 이어졌지만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말년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면서도 자선행사와 캠페인에 꾸준히 참석했다.
2002년에는 케네디센터 공로상을 받으며 배우로서의 업적을 인정받았고,
2003년 건강 문제로 은퇴를 선언했다.
2011년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세운 에이즈 재단은 지금도 치료 접근성이 낮은 환자와 취약계층을 지원하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한 시대를 대표한 영화배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그녀의 대표작보다,
아무도 다가가지 않던 병실을 먼저 찾았던 용기를 더 오래 기억한다.
스크린은 한 장면이 끝나면 막이 내린다.
그녀가 남긴 삶은 아직도 누군가의 곁에서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