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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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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모더니스트 - 유영국
유영국 ‘산-Blue’(1994) 캔버스에 유채, 삼성생명 소장  /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산은 내 안에 있다”

 유영국 110주년 기념전, 추상의 본질을 묻다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1916~2002)의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전시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오는 5월 19일부터 열린다. 

이번 전시는 ‘산은 내 안에 있다’는 작가의 철학을 중심으로 자연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내면의 풍경으로 끌어올린 그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초기 구상 작업에서 출발해 점차 형태를 단순화하며 색과 구조에 집중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절정기에 이른 색면 추상의 완성까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특히 1960~70년대에 제작된 ‘산’ 연작은 이번 전시의 핵심으로 꼽힌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강렬한 색채와 기하학적 구성이 특징인 이 작품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작가가 체험한 산의 본질을 추상적으로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유영국의 작업은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국제적 조형 감각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서구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를 단순히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산세와 자연 풍광을 자신만의 언어로 번역했다. 미술계 관계자는 “유영국의 산은 풍경이 아니라 정신의 형상”이라며 “단순한 색면과 선의 배열 속에 자연과 인간, 그리고 존재에 대한 사유가 응축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작품뿐 아니라 드로잉, 아카이브 자료도 함께 공개된다. 작가의 작업 노트와 스케치, 생전 인터뷰 기록 등을 통해 그의 창작 과정과 사유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색채를 선택하는 기준과 화면 구성에 대한 고민이 담긴 자료들은 관람객들에게 작가의 내면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관람객 반응도 기대를 모은다. 사전 공개된 일부 작품을 접한 한 관람객은 “단순한 색과 형태인데도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며 “산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시가 한국 추상미술의 뿌리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술평론가들은 유영국을 ‘고독한 탐구자’로 부른다. 유행이나 외부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평생 ‘산’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통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빠르게 변화하는 미술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예술적 태도로 평가된다.


 

서울시립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고전이 아니라, 오늘의 시선으로 유영국을 다시 읽는 자리”라며 “관람객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밝혔다.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관람객 각자의 내면에 자리한 풍경을 일깨우는 여정이 될 전망이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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