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소방차 강릉 집결…사상 최악 가뭄에 급수 지원 돌입

전국에서 소방차 50여 대 강릉으로
강원 강릉시가 기록적인 가뭄으로 심각한 물 부족에 시달리면서 정부가 긴급 대응에 나섰다. 31일 오전 강릉시 강북공설운동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소방차량 50대 이상이 집결했다. 이들은 동해·속초·평창 등 인근 지역의 소화전과 저수지에서 물을 채워와 강릉 홍제정수장으로 운반, 하루 수천 톤 규모의 급수 지원을 진행한다.
소방청은 이날부터 물탱크 차량을 중심으로 생활 거점 지역과 급수 취약지에 순환 공급 체계를 가동했다. 주민들은 지정된 급수 지점에서 생수를 공급받으며, 행정안전부는 가뭄 장기화에 대비해 군 병력과 추가 장비 투입도 검토하고 있다.
오봉저수지 ‘15% 마지노선’ 붕괴
이번 사태의 핵심은 강릉시 상수원의 87%를 담당하는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5%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31일 오전 기준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14.9%로 집계됐다. 불과 하루 만에 0.4%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식수 공급의 ‘최후 방어선’이라 불리는 15% 선이 무너지자 강릉시는 곧바로 제한 급수를 강화했다.
이미 지난 20일부터 아파트와 단독주택을 포함한 5만여 가구의 수도 계량기를 50% 잠그는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그러나 저수율 하락이 가속화되면서 31일부터는 계량기의 75%를 잠그는 고강도 절수 정책이 시행됐다. 농업용수 공급도 전면 중단돼, 지역 농가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강릉·동해안, 왜 이렇게 가뭄 심각한가
강릉을 비롯한 강원 동해안 지역은 올 들어 강수량이 예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8월 말까지 강릉 누적 강수량은 404.2㎜로, 평년(944.7㎜)의 40% 수준이다. 특히 4월 이후 강수량은 관측 이래 최저치를 기록하며 ‘역대 최악의 가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상청은 9월 10일까지도 동해안 지역에는 뚜렷한 비 소식이 없다고 내다봤다. 전국적으로는 9월 초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강릉을 포함한 강원 영동 지역은 5㎜ 안팎의 비에 그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한 달 안에 충분한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0%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며 “단순한 생활 불편을 넘어 지역 생태계와 산업 전반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위기로 발전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부, ‘가뭄 재난 사태’ 첫 선포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오봉저수지를 직접 찾아 현장을 점검했다. 이후 관계 부처에 즉각적인 재난 사태 선포와 국가 소방 동원령 발령을 지시했다. 자연 재난 중에서도 가뭄으로 재난 사태가 선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비가 오지 않을 경우 4주 내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9%대까지 추락할 것”이라며, 장기 대응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중수도 시설, 빗물 저장 시스템, 지하수 개발 등 대체 수자원 확보 방안도 병행 검토된다.
주민 불편과 사회적 파급 효과
강릉 시민들은 현재 제한된 급수 지점에서 물을 공급받고 있으나, 생활의 불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부 상가에서는 영업에 차질이 발생했고, 농민들은 모내기와 수확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관광지로서의 이미지도 손상되며 지역 경제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경단체는 “이번 사태는 단순히 강릉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위기의 전조”라며, 중앙정부 차원의 장기적 물 관리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해마다 반복되는 극한 기상현상에 맞서 지속 가능한 수자원 관리와 국가 차원의 물 분배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