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흠 씨가 펼친 검은 우산 하나”…강남역에서 두려움에 떨던 대만 부부를 지켜낸 순간

낯선 나라에서 가장 두려웠던 순간, 누군가의 작은 용기가 한 여행의 기억을 바꿔놓았다.
지난 19일 밤 11시 3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나영흠 씨(38)는
휠체어를 탄 대만인 부부가 술에 취한 남성에게 위협받는 모습을 발견했다.
늦은 밤 승강장.
취객은 주변 시민들에게 시비를 걸다가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은 부부 앞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부부는 휠체어를 뒤로 움직이며 거리를 두려 했지만,
취객은 계속 가까이 다가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 씨가 움직였다.
손에 들고 있던 검은 장우산을 들어 올리고 부부와 취객 사이에 섰다.
평범한 우산 하나가 그 순간에는 두 사람을 지키는 작은 벽이 됐다.
나 씨는 큰 소리를 내거나 맞서 싸우지 않았다. 다만 겁에 질린 부부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위험한 상황이 더 커지지 않도록 거리를 만들며 두 사람이 안전하게 이동할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취객은 부부가 탄 지하철에 함께 올라탔고, 객차 안에서도 위협적인 행동을 이어갔다.
다시 부부 쪽으로 향하는 모습을 본 나 씨는 또 한 번 앞으로 나섰다.
조금 전 취객에게 폭언을 들었던 노란색 상의의 남성도 함께했다.
두 시민은 부부 앞에 서서 하나의 보호막이 됐다.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름도, 사는 곳도 몰랐다.
하지만 그 순간 필요한 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누군가 곁에 서주는 행동이었다.
나 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긴장을 풀었다.
이후 그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이 지켜준 부부는 한국을 여행 중이던 대만인 관광객이었다.
부부는 한국어로 적힌 작은 카드를 보여주며 자신들이 대만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 순간 나 씨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기억만 가지고 돌아가야 할 여행에서 무서운 일을 겪게 된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부에게 남은 기억은 두려움만이 아니었다.
대만으로 돌아간 뒤 부부는 SNS를 통해 자신들을 도와준 한국인들을 찾았다.
가장 무서웠던 순간 앞에 서준 두 사람에게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였다.
결국 나 씨와 부부는 다시 연락이 닿았다.
부부는 그날의 도움은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큰 위로였다고 마음을 전했다.
나 씨는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었고, 지나칠 수 없었을 뿐이었다.
한 도시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유명한 장소만이 아니다.
때로는 가장 힘든 순간 만난 한 사람의 따뜻함이 오래 남는다.
강남역에서 나영흠 씨가 들어 올린 검은 우산은 비를 막는 우산을 넘어,
낯선 여행객에게 “괜찮다”는 마음을 전한 작은 희망의 울타리가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