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장애인의 창의를 확장하는 새로운 언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이 질문이 드디어 실행의 궤도 위에 올랐다.
이 만남은 단순한 비즈니스 협업이 아니었다. AI 교육, 예술, 그리고 사회적 구조에 대해 각자 축적해 온 고민이 비로소 하나의 선명한 좌표 위에서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1. 장애, 세계를 읽는 또 다른 문법
마에스트로 최승원의 커리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다. "예술적 탁월함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그에게 장애는 극복해야 할 결핍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는 또 하나의 독특한 감각 체계다. 그가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증명한 것은 개인의 재능만이 아니었다. 기존의 예술적 기준과 시스템이 얼마나 협소한 감각에 기반해 있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바로 여기서 시작되었다. AI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 그리고 그것이 장애와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혁명적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었다.
2. '보조 기술'이라는 프레임을 해체하다
현재 대부분의 장애인 대상 AI 교육은 '보조 기술(Assistive Technology)'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다. 음성인식으로 타이핑을 대체하고, 이미지 인식으로 시각 정보를 전달하는 것.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것은 그 이상이다.
우리가 정의한 AI는 생산성을 높이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사고의 임계점을 돌파하게 하는 '창의적 동반자'다. 시각장애인 작가가 AI와 함께 이미지를 텍스트로 변환하는 것을 넘어, 색채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은유적 언어를 창조하는 것. 청각장애인 음악가가 소리를 '보면서' 진동과 시각적 패턴으로 음악을 재해석하는 것. 지체장애인 안무가가 신체 움직임의 제약을 AI 기반 모션 시뮬레이션으로 무한히 확장하는 것.
"기술은 결국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의 문제다."
회의 중 최승원 대표가 던진 이 문장은 모든 논의의 핵심을 관통했다. 장애인을 기술의 시혜를 받는 '수혜자'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기술을 능동적으로 다루며 새로운 미학을 창조하는 '주체'로 세울 것인가. 우리의 답은 명확했다.
3. 우리가 설계하는 실행의 세 기둥
논의 끝에 합의된 실행 방향은 다음의 세 가지 원칙으로 정리되었다.
① 발견으로서의 AI : 기능을 넘어 언어로
AI 교육의 목표는 프롬프트 작성법이나 툴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AI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예술적 언어, 사유의 결을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마치 화가가 물감과 붓을 통해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가듯, 장애인 창작자가 AI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만의 창의적 문법을 구축하도록 지원한다.
② 질문하는 힘의 육성: 프롬프팅은 세계관이다
좋은 프롬프트는 단순한 명령어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에 대한 압축된 선언문이다. 우리는 정답을 출력하는 법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관을 투영한 질문을 생성하는 '질문 근육'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 장애인 창작자의 독특한 감각과 경험이 바로 가장 강력한 질문의 원천이 될 것이다.
③ 통합의 장(場): 특수를 넘어 보편으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것은 '장애인 전용'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대등하게 경쟁하고 협업할 수 있는, 보편적 창작 생태계다. 장애인의 독특한 관점과 감각은 이 생태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고유한 자산이 될 것이다. 우리는 분리가 아닌 통합을, 배려가 아닌 협력을, 시혜가 아닌 공동 창조를 지향한다.
4. 시혜가 아닌 필연의 시간
이 회의는 긴 여정의 출발선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차 있다. AI는 더 이상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창의'의 정의를 다시 쓰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창작의 진입장벽은 극적으로 낮아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기술적 숙련도가 아니라, 무엇을 상상하고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장애인의 고유한 감각과 경험은 압도적인 강점이 된다. 세계를 다르게 인식하는 감각,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은 사유, 불편함을 창의적으로 해결해온 오랜 경험—이 모든 것이 AI 시대의 가장 강력한 창작 자본이다.
이 변화의 변곡점에 장애인이 서야 하는 것은 사회적 배려 차원의 시혜가 아니다. 새로운 감각으로 예술과 사회의 기준을 재설계하기 위한 문명적 필연에 가깝다.
5. 다음 장면으로
지금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장애인 창작자가 AI와 함께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세상에 당당히 제시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음악, 문학, 시각예술, 퍼포먼스, 기획에 이르기까지 모든 창작 영역에서 장애인이 주도권을 가진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이제 구상은 끝났다. 실행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 실행은 단지 우리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AI 시대의 창의성이 무엇인지, 누가 그것을 정의할 자격이 있는지를 다시 묻는, 모두를 위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글은 장애인의 AI 활용을 넘어, AI 시대의 창의성 그 자체에 대한 재정의를 시도하는 프로젝트의 시작을 기록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