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으로 적 감지하는 곤충?…

곤충계에서 독특한 외모로 주목받는 ‘나무매미(treehopper)’가 머리에 달린 기이한 구조물, 일명 ‘헬멧’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단순한 장식처럼 보이는 이 구조물이 사실은 ‘정전기 탐지기’로 기능하며, 나무매미는 이를 이용해 주변 생물의 존재를 감지하고, 위험을 피하거나 사회적 상호작용을 조율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구는 영국 브리스톨대학교의 곤충생리학자 다니엘 로버트 교수팀이 진행했으며, 2025년 7월 21일(현지시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정식 발표되었다.
헬멧으로 전기장을 감지하다
나무매미는 전 세계에 약 3200종 이상이 분포하며, 그 외형은 개미나 파리처럼 작고, 머리 위에는 뿔처럼 돌출된 기묘한 구조물이 달려 있다. 연구팀은 이 헬멧 구조가 단순히 위장을 위한 모방장치가 아니라, 주변 환경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정전기는 우리가 양말을 신은 채 카펫을 걸을 때처럼 마찰에 의해 생기는 미세한 전기 현상이다. 인간은 정전기에 대한 민감도가 낮지만, 곤충은 훨씬 섬세한 수준의 전기장 변화도 감지할 수 있다. 곤충이 꽃잎을 스치거나 날개를 퍼덕일 때 생기는 정전기는 곤충들 간의 중요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연구진은 먼저 나무매미의 헬멧이 전기를 감지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을 갖추었는지 확인하고자, 헬멧의 길이, 형태, 뾰족한 돌기 등을 분석했다. 헬멧의 길고 가느다란 돌기들이 주변 전기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진화했을 것이라는 가설이 세워졌다.
실험으로 입증된 ‘정전기 감지’ 능력
실험은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 먼저 나무매미가 실제로 전하를 띠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곤충을 나무막대 위에서 걷거나 뛰게 한 뒤, 전류 센서를 통과시켜 발생하는 전하량을 측정했다. 11종 151마리의 나무매미에서 측정된 평균 전하량은 0.92피코쿨롱(pC)으로, 1조분의 1쿨롱이라는 극도로 작은 양이지만, 감지 능력을 평가하기에는 충분한 수치였다.
이어 연구팀은 나무매미가 전기장을 실제로 인식하는지를 실험했다. 작은 막대 옆에 구슬 크기의 전극을 설치하고, 나무매미 40마리를 막대에 오르게 한 뒤 전극을 작동시켰다. 그 결과 전극을 켠 실험군에서는 20마리 중 9마리가 갑작스럽게 하강했으나, 전극이 작동하지 않은 대조군에서는 단 2마리만이 반응했다. 이는 전기장 유무에 따른 명확한 행동 차이로, 나무매미가 실제로 전기장을 감지하고 있다는 근거가 되었다.
친구와 적을 전기로 구분한다
더 나아가 나무매미가 단순히 전기를 감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생존을 위한 ‘구별 능력’까지 갖추었는지도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 연구팀은 말벌과 꿀벌이 드나드는 둥지 입구에 전류 센서를 설치해 각 곤충의 전하량을 측정했고, 말벌은 평균적으로 음전하를, 꿀벌은 양전하를 띠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하량 역시 나무매미보다 벌은 3배, 말벌은 8배 더 강했다.
실험 결과, 나무매미는 ‘양전하를 띤 벌’이 다가오면 가만히 있는 반면, ‘음전하가 강한 말벌’이 접근하면 도망치는 행동을 보였다. 이는 곤충이 단순한 회피가 아닌, 전기장의 성격에 따라 의도적으로 행동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시뮬레이션에서는 특히 헬멧 구조가 복잡한 나무매미가 단순한 구조의 나무매미보다 전기장에 최대 100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즉, ‘전기장을 더 잘 느끼는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새로운 감각 체계, 새로운 생물 이해
이번 연구는 곤충의 인식 체계에 대한 이해를 넘어, 생물의 진화 방식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시각이나 후각, 촉각이 아닌 ‘전기 감각’이라는 감지 방식이 행동과 생존 전략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연구팀은 “나무매미는 전기장을 감지하는 능력을 이용해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생존 전략을 정교하게 구성하는 생물”이라며 “이 헬멧 구조가 단순한 외형이 아닌 감각기관으로서 진화한 결과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고 놀라운 생물학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향후 이와 유사한 전기 감지 능력이 다른 곤충이나 동물에게도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생물 감각 연구 분야에서 전기를 감각 기관의 하나로 본격적으로 다루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