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참사 2년…지하 거주, 오히려 7만 가구 증가

2022년 8월 8일 밤, 기록적인 폭우가 서울을 덮쳤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인 자매와 노모는 불어난 빗물 속에서 끝내 대피하지 못했다.
문이 열리지 않고 창밖은 물로 가득 차 구조 요청이 닿기 전, 세 사람은 그대로 숨졌다.
당시 참사는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고, 지하·반지하 주거 환경의 위험성이 사회적 의제로 급부상했다.
사건 직후 정부와 서울시는 “더 이상 이런 비극은 없어야 한다”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서울시는 지하·반지하 주택을 10~20년 유예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없애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월세 지원(월 20만 원)과 최대 5천만 원 무이자 융자 제도를 신설했다.
정부 역시 민간임대주택 이주 지원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수치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4년 새 7만 가구 증가…수도권 집중
한국도시연구소의 ‘지옥고(지하·옥탑·고시원) 실태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국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는 약 39만8천 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32만7천 가구보다 7만1천 가구 증가한 수치이며, 전체 가구 대비 비중도 1.6%에서 1.8%로 상승했다.
특히 이번 조사는 건축물대장 등 행정자료를 활용한 첫 전수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실태를 더 정확하게 드러낸다.
표본조사였던 2020년보다 조사 범위가 넓고 세밀해진 만큼, 실제 증가 규모가 더 명확히 드러난 셈이다.
수도권에서의 증가세는 뚜렷하다.
서울: 20만1천 가구 → 24만5천 가구(22% 증가)
인천: 지하 거주 비율 2.3%
경기: 지하 거주 비율 2.0%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관악·강북·금천구가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특히 관악구는 2005년보다도 지하 거주 가구 수가 더 많아진 유일한 지역으로 나타났다.
■침수뿐 아니라 화재 위험도 상존
지하·반지하 주택은 폭우와 같은 자연재해뿐 아니라 화재에도 취약하다.
도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22년 이후 현재까지 연립·다세대·단독주택 지하에서 발생한 화재로 숨진 거주자는 최소 7명에 달했다.
창문이 작거나 환기구가 부족하고, 비상탈출구 설치가 미흡한 구조적 특성이 사고의 치명성을 높인다.
■정책 효과 미미…예산 삭감이 악영향
전문가들은 정책이 현장에서 효과를 거두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이용률 저조’와 ‘공공임대 축소’를 꼽는다.
무이자 융자나 월세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요건과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경제적·행정적 부담으로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023년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며 “지하 거주 가구의 75% 이상이 공공임대 입주를 희망하지만,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집 아닌 곳’ 거주도 증가
지하뿐 아니라 고시원·여관·비닐하우스 등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 가구도 늘고 있다. 2024년 기준 48만1천 가구로, 2020년보다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주거 사각지대가 넓어지는 상황에서 단기 지원책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공공임대 확대, 저소득층 이주 지원, 재개발 시 공공주택 의무 비율 강화 등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번 통계는 2022년 신림동 참사 이후 사회가 던진 질문,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바꿨는가?”에 대한 냉정한 답을 보여준다.
참사의 기억이 잊히기 전에, 정책은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