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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 “당신도 참 잘 살아왔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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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책장을 넘기며
나는 지금 행복한가, 앞으로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그리고 남은 날들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가.

중년 여성에게 건네는 인생책 10선

 

쉰을 지나 만나는 책 한 권, 남은 인생의 풍경이 조금 달라진다

 

젊은 날의 독서가 세상을 알아가기 위한 것이었다면, 중년 이후의 독서는 어쩌면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녀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느라 분주했던 시간을 지나 어느 날 문득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책 한 권을 펼치는 일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조용히 그려보는 일이 된다.

 

특히 50~60대 여성에게는 거창한 철학이나 성공담보다 “당신도 참 잘 살아왔다”고 가만히 등을 두드려주는 책이 좋다. 산타뉴스가 늦여름과 가을의 문턱에서, 부담 없이 읽으면서도 오래 마음에 남을 책 열 권을 골랐다.

 

삶에는 언제나 ‘모순’이 있다

 

첫 번째로 권하고 싶은 책은 양귀자의《모순》이다. 가족과 사랑, 선택과 후회를 따라가다 보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묻게 된다. 오래전에 출간된 작품이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더 깊게 읽히는 소설이다.

 

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와 김호연의 《불편한 편의점》은 지친 마음을 편안하게 내려놓게 한다. 서점과 편의점이라는 평범한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다시 사람에게서 위로를 얻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윤정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도 마음의 얼룩을 씻어낸다는 따뜻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기억 하나쯤은 있지만, 어쩌면 필요한 것은 기억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기억까지 품으며 살아가는 힘인지도 모른다.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나이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부모와 자식, 가족과 이웃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에야 비로소 몰랐던 아버지의 얼굴을 발견하는 이야기는 부모를 보내드렸거나 이제 부모의 나이가 되어가는 중년 독자에게 특별한 울림을 준다.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역시 따뜻하다. 어린 시절 자신을 품어준 할머니의 사랑을 돌아보면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오래 ‘사랑받았던 기억’이 힘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어느새 누군가의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가는 세대라면 더욱 마음에 머무는 책이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괜찮다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상실을 경험한 한 사람이 미술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다시 삶을 바라보게 되는 이야기다. 인생에는 앞으로 달려가는 시간뿐 아니라 멈춰 서서 바라보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잔잔하게 일깨운다.

 

김수현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태수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살아온 마음을 조금 내려놓게 한다. 젊은 날에는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면 중년 이후에는 내 마음이 편안한가를 묻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행복은 점점 커지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하나씩 덜어낼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나태주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를 곁에 두어도 좋겠다. 긴 글이 부담스러운 날에는 짧은 시 한 편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사람과 꽃과 햇살, 평범했던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발견하게 한다.

 

인생의 후반전,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쉰과 예순은 무엇인가를 끝내야 하는 나이가 아니다. 오히려 남의 기대와 시선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져 비로소 자신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책도 그렇게 읽으면 된다. 많이 읽을 필요도, 끝까지 읽어야 할 의무도 없다. 마음에 드는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러도 좋고, 창밖을 바라보다 책장을 덮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한 권을 다 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책에서 만난 한 문장이 오늘의 나를 조금 따뜻하게 해주었느냐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책에서 정답을 찾았다면 이제는 책과 함께 질문하며 살아도 좋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앞으로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그리고 남은 날들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가.

 

그 질문에 당장 답하지 못해도 괜찮다. 따뜻한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천천히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페이지에선가 오래 살아온 나 자신에게 이런 말을 건네게 될지도 모른다.

 

“참 수고 많았어요. 이제는 조금 천천히, 당신을 위해 살아도 좋습니다.”

 

— 산타뉴스 문화기획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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