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흐려져도, 사랑은 남는다
“어떻게 보면 아기 같은 상태입니다.”
![사진제공 [태진아 인스타그램]](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0217/1771333060896_750867938.jpg)
중증 치매 진단을 받은 아내를 향해 가수 태진아가 흘린 눈물은 한 개인의 사연을 넘어 우리 사회의 현재를 비춘다. 그는 방송을 통해 발병 7년 차 아내의 상태를 전하며, 익숙한 노래와 추억이 담긴 장소를 통해 기억을 되살려 보려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집에서 울면 아내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운다는 고백은 많은 보호자들의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치매는 더 이상 특별한 가정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치매 환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증 단계에 이르면 대화와 판단, 일상생활 전반이 타인의 도움 없이는 어려워진다. 그러나 통계 뒤에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시간이 있다. 바로 가족의 시간이다.
치매는 환자 한 사람의 병이 아니다.
함께 사는 가족의 삶의 구조를 바꾸고, 생계를 조정하게 만들며, 관계의 방식까지 재정의한다. 보호자는 늘 긴장 상태에 놓인다. 밤중에 일어날까, 넘어지진 않을까, 갑자기 낯선 이를 알아보지 못하진 않을까. 그렇게 하루가 쌓여 몇 년이 된다.
설 명절은 가족이 모이는 시간이다.
그러나 돌봄 가족에게 명절은 기쁨과 동시에 부담이 된다. 환경이 바뀌면 환자는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고, 보호자는 잠시도 긴장을 놓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명절에 서로의 얼굴을 본다. 나이 든 부모의 주름을, 어제보다 느려진 걸음을,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태진아가 아내의 젊은 시절 추억이 담긴 장소를 찾아 영상을 찍어 돌아온 장면은 단순한 감성 연출로만 볼 일은 아니다. 의료 현장에서는 이를 ‘회상 치료’라 부른다. 익숙한 노래, 사진, 장소는 사라진 듯 보였던 기억의 일부를 잠시 떠올리게 한다. 완치의 기적은 아닐지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작은 시도다.
문제는 사랑만으로 돌봄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고령화는 개인의 효심이나 가족의 헌신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장기요양 시스템, 지역사회 돌봄 인프라, 보호자 지원 정책이 촘촘하지 않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소진된다. 우리는 종종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왔다.
그러나 가족은 제도가 아니다.
사랑은 숭고하지만, 구조는 냉정하다.
설을 맞아 가족이 둘러앉은 식탁에서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건강검진 결과와 재산 문제만이 아니라, 돌봄의 계획과 역할 분담도 함께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문을 두드릴 수 있다.
기억은 점점 흐려질지라도, 기억하려는 사람의 노력은 남는다.
누군가는 오늘도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울고 있을지 모른다. 그 눈물이 개인의 고통으로만 머물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감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
명절은 돌아오지만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서로의 기억이 되어줄 존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