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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뉴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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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따뜻한 세상
가을, 소통의 소중함 /  AI생성 이미지

• 소통의 시대, 더 깊어진 ‘외로움’의 역설

 

가을은 언제나 고독을 떠올리게 하는 계절이다. 나뭇잎이 저마다의 색을 피우며 떨어질 때, 인간의 마음 또한 그 낙엽처럼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고독은 예전의 자연스러운 고독과는 다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의 대화창을 열고, 수백 개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SNS 피드는 끝없이 새로고침되며, 화면 속에는 ‘소통’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롭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시대에 소통하지 않는 인간의 역설이다.

 

• 끊임없는 연결 속의 단절

 

디지털 기술은 연결의 환상을 선사했지만, 그 연결은 종종 피상적이다.
한 대학생은 ‘SNS 친구는 천 명이지만, 진짜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한 직장인은 회사 메신저와 단체 채팅방 속에서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지만, 퇴근 후엔 정적이 감도는 집에 홀로 앉아 있다.


이처럼 현대의 소통은 정보의 교환에는 성공했지만, 감정의 교류에는 실패하고 있다.
우리의 대화는 점점 더 빠르고, 짧고, 얕아졌다.
말의 속도는 높아졌지만, 마음의 깊이는 얕아진 것이다.

 

• 외로움의 역설 ― ‘함께 있음’ 속의 고립

 

외로움은 더 이상 혼자 있는 사람의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 속에서도, 관계의 한가운데서 느껴지는 것이 현대적 외로움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집단 속의 고립이라고 부른다.


타인의 시선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비교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을 감추게 된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대신, ‘괜찮은 척’하며 살아간다.
결국 소통은 연기된 관계가 되고, 그 사이에서 인간은 더 깊은 고독을 경험한다.

 

• 외로움이 주는 통찰 ― 고독의 긍정적 의미

 

그러나 외로움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가을이 자연의 쉼표이듯, 외로움은 인간 존재의 쉼표일 수도 있다.
외로움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한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고독은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자각하는 순간‘이라 했다.
즉, 진정한 소통은 타인과의 대화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자기 회복의 시간이 될 수 있다.

 

• 외로움을 극복하는 새로운 방식 ― 깊이의 회복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계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으로도 변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혼밥, 혼술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오히려 진정한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혼자 있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의 시간을 존중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최근 ‘고독사 예방 커뮤니티’, ‘마음 돌봄 모임’ 등 일상의 정서적 관계망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이 단지 연결망의 노드(node)가 아니라, 감정을 가진 존재임을 일깨운다.

또한 개인 차원에서도 깊이 있는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짧은 메시지 대신 직접 만나서 대화하기,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기,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소통이 기술이 아닌 관계의 예술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외로움의 고리를 조금씩 끊을 수 있다.

 

• 고독은 피할 수 없지만, 외로움은 선택이다

 

결국 인간의 고독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혼자다.
그러나 외로움은 단절의 감정이 아니라 연결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가을의 낙엽이 썩어 흙이 되고, 그 흙이 다시 생명을 키우듯, 외로움도 새로운 관계의 씨앗이 된다.


진정한 소통은 외로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고 끌어안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외로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 속에서도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럴 때 가을의 고독은 슬픔이 아니라, 성찰의 빛으로 우리를 물들일 것이다.

 

류재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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