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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한 통 뒤 사라진 기부자, 박스에는 현금과 손편지…누적 기부액 7억6000여만원

성연주 기자
입력
집중호우 피해 주민 위해 또 500만원…2017년부터 재난 때마다 이름 없이 나눔 실천
[사진제공 사랑의 열매]
[사진제공 사랑의 열매]

“사무국 앞에 박스를 두고 갑니다.”
짧은 전화 한 통이 지난 21일 오후 1시께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국에 걸려왔다. 직원들이 밖으로 나가 확인한 박스에는 현금 500만원과 손으로 쓴 편지, 국화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최근 남부지역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한 성금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남기지 않았다. 전화 역시 발신번호를 제한한 채 걸려왔다. 기부자가 남긴 것은 피해 주민에게 전해 달라는 돈과 몇 줄의 글뿐이었다.


편지는 이번 호우로 희생된 이들과 유가족을 향한 조의로 시작됐다. 삶의 터전을 잃은 수재민을 위로하고 하루빨리 복구가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뜻도 담겼다.


기부자는 자신의 성금을 ‘작은 성의’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번 500만원까지 더해 그가 2017년부터 내놓은 기부금은 모두 7억6000여만원에 이른다.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이번 기부자가 지난 9년간 신원을 밝히지 않은 채 성금을 보내온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전화하는 방식과 손편지의 필체, 글을 맺는 표현 등이 이전 기부 때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기부는 특정한 시기에만 머물지 않았다.


매년 연말연시 어려운 이웃을 위한 성금을 전달했고, 국내외에서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도 피해 복구와 이재민 지원을 위해 돈을 보탰다. 재난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필요한 곳을 살핀 뒤 자신의 이름을 지운 채 성금만 남기는 방식이었다.


이번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사무국 앞에 놓인 평범한 박스. 그 안에는 현금 500만원이 담겨 있었다. 손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국화 한 송이는 이번 집중호우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애도하는 기부자의 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물건이었다.


화려한 전달식도 없었다. 기념사진을 찍을 사람도, 자신의 사연을 설명할 사람도 없었다. 직원들이 박스를 발견했을 때 기부자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숫자로 보면 9년간 7억6000여만원이다.


하지만 이 숫자를 채운 것은 한 번의 거액 기부가 아니었다. 연말의 어려운 이웃부터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일상을 잃은 이재민까지, 도움이 필요한 순간마다 성금이 전달됐다. 이번 집중호우 역시 그가 지나치지 않은 재난 가운데 하나였다.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역사회 나눔 문화를 확산하고 성금을 모아 복지 사각지대와 재난 피해 주민 등을 지원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역 조직이다. 이번에 전달된 500만원도 집중호우 피해지역 이재민 지원과 복구를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박은덕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처장은 기록적인 호우로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을 생각해 준 마음에 감사를 전하며, 기부자의 뜻이 피해지역의 복구와 이재민의 일상 회복에 제대로 전달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익명 기부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기부액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선택을 반복했다는 점, 재난이 닥칠 때마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먼저 떠올렸다는 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한 번도 앞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함께 남는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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