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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기부왕, 찰스 척 피니 — “살아있을 때 나누는 행복”의 길을 남기다

산타뉴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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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부호에서 ‘무소유의 철학자’로, 80억 달러를 모두 기부한 남자의 삶과 마지막 미소
찰스 척 피니 [사진제공 나무위키]
찰스 척 피니 [사진제공 나무위키]

미국의 기부왕으로 불린 찰스 척 피니(Charles ‘Chuck’ Feeney) 는 한평생 ‘조용한 나눔’을 실천한 인물이었다. 

그는 1931년 뉴저지의 가난한 아일랜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이웃을 돕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간호사였던 그의 어머니 매들린은 병든 이웃을 정기적으로 돌보며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눌 수 있다"는 믿음을 몸소 보여주었다.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은 피니의 인생 철학이 되었다.

 

젊은 시절, 그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팔아 용돈을 벌었고, 한국전쟁 당시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국제 사회의 현실을 직접 경험했다. 

전쟁 후 미 GI 법을 통해 코넬대학교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1960년 대학 동창과 함께 세계 최초의 면세점 사업을 구상했다. 

그렇게 탄생한 DFS 그룹(Duty Free Shoppers) 은 전 세계 여행자들을 사로잡으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피니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돈이 쌓일수록 그는 "부가 나를 옭아맨다"는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던 중 그는 앤드루 카네기의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 을 읽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 

“부자로 죽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문장은 그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1984년, 피니는 자신이 소유한 DFS 지분 38.7%를 비밀리에 자신이 만든 자선재단에 모두 넘겼다. 당시 가치로 약 7,2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그는 익명으로 수많은 기부를 진행했으며, 수혜자들조차 누가 도왔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살아있을 때 기부해야 그 영향력을 직접 보고, 더 현명하게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기부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코넬대학교, 아일랜드와 베트남의 대학과 병원, 호주의 연구소 등 그가 남긴 발자취는 학문과 인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2010년, 그의 철학은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에게 깊은 감동을 주어,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서약한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피니는 끝까지 검소했다. 

그는 집도 차도 소유하지 않았고, 10달러짜리 카시오 시계를 찼으며, 문서를 비닐봉지에 넣고 다녔다.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살면서, 자신에게 남긴 재산은 약 200만 달러(28억 원)에 불과했다.

 

2020년 9월, 89세의 피니는 “모든 돈을 다 썼다”며 자신의 재단을 공식 해산했다. 그가 38년간 기부한 금액은 무려 80억 달러(약 11조 5천억 원) 에 달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우 행복합니다. 내 목표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찰스 척 피니는 2023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부의 진정한 의미가 ‘소유’가 아닌 ‘나눔’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세상에 선한 흔적을 남길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한 사람으로.

 

그는 거창한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 ‘살아있는 교훈’ 이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은가?”
 

산타의 눈에 비친 피니는,빛보다 조용한 선물이었다.
그는 이름을 감추고도 세상을 밝혔고,가진 것을 쌓기보다 흩날려 나눴다.
누군가의 교실, 누군가의 병원이 그의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산타는 그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
“이 사람은 이미, 세상을 다 안아버렸구나.”
 

성연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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