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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칼럼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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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지어 드립니다
뜨거운 국물 한 숟갈에 속이 풀리는 일, 마음 한 구석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하루를 버텨 내는 일, 우리는 이런 것들을 너무 당연히 여기지만 사실 이 또한 쉽게 주어지지 않는 복이다.


 

복은 덤이 아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습관처럼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한다. 

말은 가볍지만 그 말이 닿는 마음은 가볍지 않다. 누군가에게 새해는 희망의 시작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생존의 연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새해 인사가 때로는 축하보다 부담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종종 ‘복’을 크고 눈에 띄는 것으로 오해한다. 

성과, 성공, 돈, 승진, 합격 같은 결과물만이 복인 듯 여긴다. 마치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덤으로 얹어주는 사은품처럼 복은 많이 가질수록 좋은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복은 그렇게 손에 잡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래서 가끔은 아니 자주 빈손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삶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다른 풍경이 보인다. 

아침에 눈을 뜨는 일, 뜨거운 국물 한 숟갈에 속이 풀리는 일, 마음 한구석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하루를 버텨내는 일, 우리는 이런 것들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만 사실 이 또한 쉽게 주어지지 않는 복이다. 살아낸 하루는 언제나 기적에 가깝다.


 

요즘 사람들은 쉽게 웃지 못한다. 

웃어야 할 이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는 날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사치가 아니라 최소한의 소망이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버겁다고 말할 수 있는 하루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인다.


 

살다 보면 울 일이 생긴다. 

피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울지 않는 삶이 아니라 울고 나서 다시 밥을 먹을 수 있는 힘이다. 눈물 뒤에 일상이 이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의 회복력이고 조용한 복이다. 우리는 종종 강해지기를 요구받지만 사실은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새해에 꼭 크고 빛나는 복이 아니어도 좋다. 자신 몫의 숨과 밥과 사람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한 해라면 충분하다.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숨, 몸을 지탱해주는 밥, 마음을 붙들어주는 단 한 사람. 이것들을 지켜낼 수 있다면 이미 많은 복을 받은 셈이다.


 

새해 인사는 결국 다짐이 아니라 기원이어야 한다.

 더 잘 살라는 말보다 무너지지 말라는 말이 먼저여야 한다. 올 한 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다. 

크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복을 받았다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

덤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

류재근 기자
                    류재근 기자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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