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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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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인간 관계도 숏폼으로
가볍고 짧지만 필요할 때 이어지는 관계, 변화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재설계하는 세대의 초상이다.


 

깊지 않아도 연결된다
 

2030 — ‘가볍고 짧은 모임’의 확산


 

2030세대의 인간관계 풍경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맞춰 장시간 함께하는 모임보다 필요할 때 짧게 만나고 목적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흩어지는 ‘가볍고 짧은 모임’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1시간 커피 약속, 점심시간 산책, 운동 한 게임, 전시 관람 동행처럼 부담 없는 만남이 일상화되고 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모(31) 씨는 ‘주말마다 이어지는 정기 모임은 체력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된다. 퇴근 후 40분 러닝이나 점심 커피처럼 짧게 만나면 오히려 관계가 오래 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2030세대 사이에서는 ‘얼마나 자주 보느냐’보다 ‘얼마나 편하게 만날 수 있느냐’가 관계의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학생 이모(24) 씨는 동아리 활동 대신 소셜 플랫폼을 통해 단발성 모임에 참여한다. 

그는 ‘전시 하나 보고 헤어져도 어색하지 않고, 다음에 또 볼지 말지는 굳이 약속하지 않는다’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어서 오히려 더 편하다’고 설명했다. 관계의 지속성이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바뀐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개인의 성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 높은 주거비, 촘촘한 업무 일정 속에서 2030세대는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인간관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깊지만 무거운 관계보다 가볍고 관리 가능한 관계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작동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의 영향도 크다. 

메신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상시적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오프라인 만남의 역할은 달라졌다. 과거처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만남’이 아니라 특정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선택적 만남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그 결과 오프라인 모임은 짧아지고, 목적은 더 분명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관계의 단절로만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학계에서는 ‘2030세대의 모임 문화는 인간관계의 축소가 아니라 재구성’이라며 ‘개인의 삶을 과도하게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연결을 유지하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분석한다. 타인의 감정과 시간을 지나치게 소모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현대 사회의 피로도가 반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심리 분야 전문가 역시 ‘짧고 가벼운 모임은 정서적 소진을 줄이는 기능을 한다’며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던 과거와 달리 선택과 조절이 가능한 관계는 정신 건강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속적인 신뢰 관계가 완전히 사라질 경우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어 균형 있는 관계 설계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2030세대의 모임은 더 이상 ‘얼마나 오래 함께했는가’로 평가되지 않는다. 대신 ‘얼마나 부담 없이 연결될 수 있는가’가 핵심 기준이 됐다. 가볍고 짧지만 필요할 때 이어지는 관계. 이는 관계를 포기한 세대의 모습이 아니라 변화한 사회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재설계하는 세대의 초상이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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