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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휠체어 교사, 장애인 권리의 토대를 만든 운동가 주디 휴먼

성연주 기자
입력
학교 입학조차 거부당했던 소녀가 28일간의 역사적 농성을 이끌며 미국 장애인 권리 제도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1947년 미국 펜실베이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주디 휴먼(Judith Heumann)은 생후 18개월에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휠체어를 사용했다. 

학교는 그를 '화재 시 대피가 어렵다'는 이유로 입학시키지 않았지만, 그는 차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뉴욕 최초의 휠체어 교사가 되었고, 미국 장애인 권리 운동을 이끈 대표적 인물로 기록됐다.


처음부터 그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지만 그는 집에서 제한된 교육을 받아야 했다. 

장애 때문이 아니라 장애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 때문이었다. 

훗날 그는 "장애가 비극이 아니라 사회의 장벽이 비극"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경험을 인권 운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교사가 되겠다는 꿈도 순탄하지 않았다.


1970년 뉴욕시 교육위원회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그는 

학생들을 대피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교사 자격을 거부했다. 

휴먼은 소송을 제기했고 승리했다. 

이 판결로 그는 뉴욕 최초의 휠체어 사용 교사가 됐으며, 

장애를 이유로 직업을 제한하는 관행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0년 장애인 권리단체 '디서블드 인 액션(Disabled in Action)'을 공동 설립해 

장애를 복지의 대상이 아닌 시민권의 문제로 바라보는 운동을 이끌었다. 

교육과 이동, 고용, 공공시설 이용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할 권리라는 인식이 사회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1977년 그의 이름은 미국 장애인 인권 역사에 새겨졌다.


미국 정부가 재활법 제504조 시행 규정에 서명하지 않자 

휴먼은 샌프란시스코 연방청사에서 28일간 이어진 연좌농성을 주도했다. 

참가자들은 휠체어와 목발, 의료기구에 의지한 채 건물을 지켰고, 

시민단체와 지역사회는 음식과 의약품을 지원하며 연대했다.


결국 정부는 규정에 서명했다.


이 결정은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 첫 번째 전환점이 됐고, 

훗날 1990년 미국장애인법(ADA) 제정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기반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휴먼은 거리의 활동가를 넘어 정책을 만드는 자리에서도 변화를 이어갔다.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교육부 특수교육·재활서비스 차관보를 맡았고,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국무부 국제 장애인 권리 특별고문으로 활동했다. 

세계은행에서는 장애 포용 정책을 국제 개발사업에 반영하는 데 힘쓰며 

장애인 권리의 범위를 세계로 넓혔다.


그가 평생 바꾸려 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 인정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그의 활동은 법과 제도를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장애를 바라보는 기준까지 흔들어 놓았다.


2023년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학교의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장애 학생의 교실, 

차별을 막는 법과 제도는 여전히 그의 발걸음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권리 가운데에는, 누군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변화가 있다. 그 이름이 바로 주디 휴먼이었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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