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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교실, 내신 리셋 바람이 분다

류재근 기자
입력
입시 안정성이 필요한 교육 정책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세심한 정책적 보완이다.

내신 리셋 열풍, 공정성인가 혼란인가

 

5등급제 개편이 불러온 고교 현장의 새로운 풍경

 

학생들 사이 번지는 ‘내신 리셋’ 바람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 이른바 ‘내신 리셋’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2028학년도 대입 개편을 앞두고 고교 내신 평가 체계가 기존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의 움직임도 달라지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성적을 받은 학교를 떠나 전학을 고려하거나, 

재수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입시 전략을 세우는 등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8 대입제도 개편안에 따르면 내신 상대평가 등급은 기존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단순화된다. 

이에 따라 상위권 학생들이 동일 등급에 포함되는 비율이 크게 늘어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새로운 평가 기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주요 입시 커뮤니티와 교육 상담 현장에서는 2028 대입 관련 문의가 급증하고 있으며, 

일부 진학 상담 기관은 고1 학생과 학부모의 상담 건수가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고 전한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제도 개편이 과도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등급은 줄었지만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9등급제에서는 상위 4% 학생만이 1등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5등급제에서는 상위 10%까지가 1등급을 받는다. 표면적으로는 경쟁이 완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다르다.

 

예를 들어 학생 200명이 있는 학년을 기준으로 하면 기존에는 약 8명만 1등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5등급제에서는 약 20명이 1등급에 포함된다. 1등급 학생 수가 2배 이상 늘어나는 셈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동일 등급 학생이 증가하기 때문에 세부 평가 요소를 더욱 면밀히 살펴볼 가능성이 높다.

 

학생들은 단순히 등급만이 아니라 대학이 요구하는 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과목 선택 이력, 학교생활기록부 전반을 더욱 치열하게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같은 1등급 학생이 늘어나면서 대학들은 학생을 구분할 새로운 기준을 찾게 되었고, 

그 부담이 다시 학생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고교 진학부장은 “등급 경쟁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세특과 비교과 활동 경쟁이 더 심화되고 있다”며 “학생들의 스트레스가 다른 형태로 이동한 셈”이라고 말했다.

 

전학·재수 고민 늘어나는 학생들

 

최근 온라인 입시 커뮤니티에는 ‘내신 리셋’을 주제로 한 게시글이 크게 늘고 있다. 

학생들은 “지금 학교에서 받은 성적이 불리하다”, “전학을 가면 유리할까”, “재수를 하면 더 좋은 조건에서 입시를 치를 수 있을까” 등을 고민한다.

 

특히 고1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 선택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학교별 학업 수준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느 학교가 유리한지에 대한 정보가 입시 전략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진학 상담 과정에서 전학 가능 여부를 문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 일부 일반고 교사들은 “예전에는 학업 적응이나 거주지 이전이 전학의 주된 이유였지만 최근에는 내신 경쟁 환경을 고려한 상담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 본연의 가치보다 성적 관리와 입시 전략이 우선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학생들은 배움의 즐거움보다 유불리를 따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으며, 

학부모들 역시 입시 정보를 찾아다니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학교 간 서열화 우려도 커져

 

교육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학교 간 서열화 심화다. 특정 학교의 내신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학생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통계적으로도 학교 간 학업 성취도 차이는 적지 않다. 

교육청 학업성취도 자료와 대학 입시 결과를 보면 지역과 학교 유형에 따라 상위권 학생 비율이 크게 차이 나는 경우가 확인된다. 

이 때문에 동일한 1등급이라도 학교별 학업 수준 차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우수 학생이 특정 학교에 집중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학교 간 교육 격차를 더욱 확대시키고, 결국 지역 교육 생태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입시 제도가 바뀔 때마다 학교 선택이 투자의 개념으로 변질되는 현상이 반복된다”며 “학생들이 학교를 교육 공동체가 아닌 입시 도구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입시 안정성 높이는 보완책 필요

 

교육 정책은 공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입시 환경은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상당한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학들이 학생 평가 기준을 보다 명확하게 공개하고, 교육 당국 역시 학교 간 평가 격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입시 제도의 잦은 변화가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을 주지 않도록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 운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대학들이 학생부 평가 요소의 반영 비율과 정성평가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안내할 경우 수험생들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 현장에서도 교사들의 학생부 기록 부담을 완화하고 학교 간 평가 편차를 줄이기 위한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내신 5등급제는 분명 경쟁 완화라는 긍정적 목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바뀌었다고 해서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쟁의 형태만 달라질 뿐이다. 

실제로 1등급 비율이 4%에서 10%로 확대되면서 등급 자체의 변별력은 낮아졌지만, 

학생부 세부 기록과 과목 선택 전략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세심한 정책적 보완이다. 

교육의 중심이 성적이 아니라 성장에 놓일 때 비로소 입시 제도 개편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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