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뉴스/오늘 산타
오늘의 산타

60년 한국 빈민과 함께한 안광훈 신부를 기리며

산타뉴스 사설
입력
이웃의 눈물을 닦아준 한 사제의 삶
 
60년간 한국서 빈민 보듬은 안광훈 신부 선종
빈자들의 성자 고 안광훈 신부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국의 가난한 이웃과 함께한 한 사제가 우리 곁을 떠났다. 

60년 동안 한국에서 빈민과 약자를 보듬어 온 안광훈 신부가 향년 85세로 선종했다. 

먼 이국에서 시작된 그의 삶은 결국 한국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마무리되었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한 사람의 사제가 얼마나 깊은 사랑으로 한 사회의 아픔을 껴안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한 편의 복음서와 같다.

 

194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그는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사제품을 받은 뒤 1966년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한국은 전쟁의 상처를 겨우 딛고 일어나던 시기였다. 경제 성장이 시작되었지만 그 성장의 그늘에는 여전히 가난과 소외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그의 사목 활동이 가장 빛난 곳 가운데 하나는 강원도 정선이었다. 그는 1972년 정선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며 고리대금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보았다. 돈이 없어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빚 때문에 삶이 무너지는 이들이었다. 그는 단순히 위로의 말을 건네는 사제가 아니었다. 그는 구조를 바꾸려 했다. 

 

그래서 주민들과 함께 정선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가난한 이들이 서로 돕고 스스로 삶을 지켜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공동체 금융이었다. 또 의료 혜택이 부족한 주민들을 위해 성프란치스코 의원을 열어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이는 신앙이 교회 울타리 안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실천되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을 보여준다.

 

그는 또한 정의를 외면하지 않았다.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지학순 주교가 군사정권에 의해 구속되었을 때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석방 운동에 함께하며 양심의 편에 섰다. 신앙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1980년대 서울로 옮긴 뒤에도 그의 사목은 계속 가난한 이들을 향했다. 목동 신시가지 개발로 안양천 변 판자촌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던 때였다. 많은 이들이 개발의 이름 아래 거리로 내몰렸다. 

그는 성당 문을 열었다. 본당 건물을 이들에게 내어주고 새 삶의 터전을 찾을 때까지 함께했다. 

성당은 그들에게 단순한 예배 장소가 아니라 피난처이자 희망의 공간이 되었다.

 

또한 1997년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로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을 때 그는 실업자들과 함께했다. 

서울 북부실업자사업단 강북지부, 지금의 삼양주민연대 활동을 맡아 실직자들의 자활과 공동체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의 사목은 언제나 시대의 고통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의 삶은 결국 한국 사회도 인정했다. 2020년 그는 특별공로자 자격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받았다. 

태어난 나라는 뉴질랜드였지만, 그의 삶의 국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이었다.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온 그의 세월이 이를 증명한다.

 

오늘 우리는 한 사제를 떠나보내며 질문을 마주한다. 급속한 성장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약한 이웃을 돌아보고 있는가. 

 

개발과 경쟁의 이름 아래 또 다른 빈민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안광훈 신부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가난한 사람 곁에 서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는 거대한 조직을 세운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며 공동체를 세웠다. 그는 화려한 말을 남기지 않았지만, 삶으로 복음을 증명했다. 

그의 사목은 설교가 아니라 동행이었다.

 

성경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 

안광훈 신부는 바로 그 말씀을 평생 살아낸 사람이었다.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삶이 남긴 질문과 사랑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남아 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문을 열었던 그 성당처럼, 우리 사회도 더 넓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60년 동안 한국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한 한 선교사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가난한 이들의 친구였던 그 사제가 이제는 하느님의 품에서 평화를 누리기를 기도한다.

 

사랑으로 살다 간 삶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랑은 우리 사회가 계속 이어가야 할 유산이다.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