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여행기
산타 뉴스는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 대장정 15500Km, 중국을 보다>, <물속에 쓴 이름들, 손호철의 이탈리아 사상 기행>, <카미노 데 쿠바: 즐거운 혁명의 나라 쿠바를 가다> 등 역사기행 책을 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번 여행기는 지난 7월 손 교수가 지상의 낙원인 ‘샹그릴라 ’이자 세계 최장수 마을인 파키스탄의 훈자계곡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이라는 카라코룸하이웨이로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건너 위구르족의 고향인 중국의 신장에 이르는 오지를 다녀온 여행기다.
그의 여행기를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연재한다.
“카라는 여기 말로 검다는 뜻입니다. 카라코룸은 검은 곤륜산을 의미하지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오늘은 타슈쿠르간에서 마지막 행선지인 카스까지 5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그 도중에 있는 것은 ‘검은 호수’라는 뜻의 카라클리다. 사방에 설산으로 둘러싸여 설산이 호수에 비치는 비경으로 유명한 이 호수는 때때로 빛의 반사 등으로 물색이 검은 색으로 변해 검은 호수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아니 설산은 어디 갔어?” 정작 호수에 도착하니 구름이 잔뜩 끼어 설산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실망한 마음을 달래려고 “인샬라!”를 몇 번이고 외쳤다.
대신 관광객들을 피해 사람들이 없는 왼쪽 끝으로 향했다. 출발시간에 맞추기 위해 거의 달리듯이 이동했다. 갑자기 호수에 검은 색들이 나타났다. 설산은 못 봤지만 검은 호수는 조금 맛 볼 수 있었다.


카스에 도착했다. 위구르족의 정신적 수도인 카스는 위구르인들은 ‘옥이 모이는 곳’이란 뜻의 ‘카슈가르’라고 부른다. 가까운 호탄에서 세계 최고의 옥들이 생산되어 이곳으로 모이기 때문이다.
카스는 혜초가 서역 여행을 마치고 파미르고원을 넘어 타슈쿠르간에 도착해 휴식을 취한 뒤 걸어서 한 달 만에 도착했던 곳이다. 혜초가 도착했을 때는 위구르족과 이슬람이 이 지역을 지배하기 전으로, <왕오천축국전>에 따르면 “절이 있고 승려도 있으며 소승법이 행해”졌고 “고기와 파, 부추를 먹으며 토착인들은 모직옷을 입던” 곳이다.
2009년 봄, 나는 시안-돈황-투르판-우루무치-쿠얼러-쿠차-카스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답사를 다녀왔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7월 5일 신장(정확한 명칭은 신장위구르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에서 ‘위구르 항쟁’이 발생했다.
중국에서 ‘2등 시민’ 대접을 받은 위구르 노동자 2명이 광조우에서 살해된 것에 항의해 위구르인들은 우루무치에서 중국기를 흔들며 차별 철페를 요구하는 평화 시위를 벌렸다. 이 시위가 한족들과 부딪치며 무장한 폭력시위로 발전해 197명이 사망했다.
중국정부는 희생자들이 대부분 한족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위가 정부 개입으로 진정된 뒤 한족이 보복에 나서 최소 800명의 위구르족이 살해됐다는 것이 세계위구르회의 등 위구르 세력의 주장이다.
2008년 나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마오져뚱이 국민군을 피해 1만 Km를 도주한 역사적인 대장정을 두 달에 걸쳐 답사하고 <레드 로드>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 책에서 나는 빠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네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썼다. 그것은 1) 자본주의 이상으로 벌어진 빈부격차, 2) 심각한 환경오염, 3) 민주주의, 4) 민족문제다.
민족문제는 중국이 안고 있는 심각한 아킬레스건이다. 중국의 소수민족은 인구의 8% 수준이지만 국토의 63.7%를 차지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장이다. 신장의 인구는 2500만 명에 불과하지만, 그 영토는 중국의 6분의 1이고, 그 국경은 길이가 6500Km로 8개국과 접해 있다. 자원도 어마어마하다. 신장은 세계 면화의 4분의 1, 세계 토마토의 30%를 생산하고 있고 석유, 석탄 등 지하자원이 거의 무한정이다.
2009년 비극 후 중국은 위구르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중국이 삼청교육대 같은 교화소를 세워 위구르족의 의식 개조작업을 벌리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를 벌리고 있다는 것이 관련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신장 면화 등에 대한 수입금지 등 경제제재를 하고 있다.
“손 교수, 내 티셔츠 열 컨테이너 다 날아갔어.” 어느 날 미국에서 대형 티셔츠 사업을 하는 친구가 울상을 지며 전화를 했다. 중국에서 티셔츠를 만들어 수입하는데 미국 세관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티셔츠 봉제작업에 쓴 실이 신장 면화로 만든 것임을 밝혀내 다 압수해 버렸다는 것이다.
위구르족은 튀르키예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는 등 스스로 ‘동튀르키예(동돌궐)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극소수 극렬 독립운동 세력들은 신장을 ‘동튀르키예공화국’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군사력 이외에도 여러 요인들 때문에 이는 불가능한 꿈에 가깝다. 중국정부가 신장지역에 한족들을 이주시키고 석유 등 자원이 풍부해 경제 붐이 일면서 한족의 인구가 위구르 인구(45%)에 육박하는 42%에 이르고 다른 소수민족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건륭황제의 비로 총애를 받았고 몸에서 향기가 나서 향비라고 불렀던 지역 유력 집안의 묘지(향비묘)로부터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인 에이트가르 청진사,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카스고성 등 카스를 대표하는 관광지들을 돌아봤다.
향비릉과 청진사는 15년 전과 별 변화가 없었지만, 카스고성의 상점가는 많이 변했다.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상권이 활발했다.




카스고성의 번화한 상점가를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위구르 독립을 추구하는 극소수극열분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위구르들은 ‘상대적인 경제적 풍요’ 속에 체제 내에 통합된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중국의 물리적 공권력 앞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인가?
문득 고성에 있는 한 카페에 그려져 있는 체 게바라의 사진과 그 밑에 써놓은 글이 가슴을 찔렀다. “영혼이 머물 곳이 없어 방랑을 선택했네.” 위구르인들의 심정인 것처럼 느껴져 가슴이 멍했다.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확고히 다지자>. 신장 여기저기에 써 놓은 표어다. 이런 표어를 사방에 써 놓았다는 것은 역으로 위구르족을 비롯한 여러 소수민족들의 ‘중화민족 공동체의식’이 전혀 확고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다음 패권국은 어디가 될 것인가? 경제적으로 중국이 세계를 제패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억압’과 ‘폐쇄성’에 머무르는 한, 제국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다. 지난해 미국 답사에서 나는 (우리가 인디언이라고 잘못 부르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노예들에게 미국이 저지른 천인공노할 만행의 역사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치를 떨었다.
미국의 역사는 중국의 소수민족 억압사 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다. 하지만 커다란 차이가 있다. 미국은 여러 박물관 등에 이 같은 역사를 솔직히 전시하고 반성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제국의 미래>.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제국들을 연구한 이 책은 제국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관용’과 ‘개방성’이며 이를 잃는 순간 몰락했다고 주장한다. 관용과 개방성으로 세상에서 최고의 인재들을 받아들이고 여러 세력을 모으고 끌어안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제일주의’라는 이름 아래 미국의 문을 닫고 있는 트럼프주의는 미국이 망하고 있고 더 이상 제국이 아니라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비행기가 카스공항을 떠나자,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에이트가르 청진사 광장에 서 있던 중국 무장경찰의 굳은 얼굴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위구르의 눈물’이었다. 위구르의 눈물을 생각하며 나는 신장을 떠났다.









[ 끝 }
[ 장장 9편에 이르는 소중한 여행기를 연재해 주신 손 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