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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주교의 마지막 꿈

류재근 기자
입력
발달장애인 양로원 건립
김 주교의 시몬의 집은 그 과제를 한국 사회 한 복판으로 끌어내는 상징적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


 

“같이 늙어갈 집이 필요합니다”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의 ‘발달장애인 양로원’ 마지막 소원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발달장애인 직업재활공동체 ‘우리마을’에는 요즘 유난히 자주 오가는 말이 있다. 

‘정년 이후는 어디로 가나.’  이곳 촌장 김성수(시몬) 대한성공회 주교(은퇴·95~96)가 평생 소원으로 내건 ‘발달장애노인 그룹홈(양로원)’ 건립의 출발점도 그 질문에서 시작됐다. 

김 주교는 언론 인터뷰에서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25년을 함께 살아왔다며, 나이 든 뒤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들을 위해  따뜻한 보금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60세가 되면 익숙한 일터에서 떠나야 
 

우리마을은 김 주교가 지난 2000년에 유산으로 받은 강화의 땅 약 3천평(9,900㎡)을 기부해 세운 직업재활시설이다. 

발달장애인들이 콩나물 생산과 전자부품 조립, 커피박(찌꺼기) 재활용 제품 제작 등을 하며 월급을 받는 노동을 통해 사회적 자립감을 키우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콩나물은 기업과 협력 유통되며 연 매출이 18억원가량이라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일터가 곧 ‘노후의 집’이 될 수는 없다. CBS 보도에 따르면, 우리마을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 가운데는 1974년 성베드로학교 1기 졸업생도 있다. 

그는 ‘일하는 것도 재밌고, 주교님이 아버지처럼 보인다’고 말하지만, 60세가 되면 정책 환경과 시설 운영 규정 속에서 더 이상 기존 체계에 머물기 어려워진다. 김 주교는 ‘이제 같이 늙어간다’는 표현으로 이 현실을 받아 적었다. 


 

양로원이 아니라 ‘그룹홈’

  — 가정형 돌봄을 꿈꾸다
 

김 주교가 추진하는 시설은 대규모 수용시설과 결이 다르다. 경기일보는 이를 ‘발달장애노인 그룹홈’으로 소개하며, 1동에 4명이 생활하는 소규모 주거 형태로 설명했다.

 노화와 장애가 겹치며 돌봄 난도가 높아지는 시기에 병원·요양원 모델이 아닌 ‘집 같은 환경’에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계획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김 주교의 오래된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연세대 총동문회 인터뷰에서 그는 성베드로학교(국내 최초 지적장애인 특수학교로 소개) 설립, 우리마을 조성에 이어 마지막 과업으로 ‘발달장애인 양로원 설립은 저의 버킷 리스트’라고 말했다. 동석한 우리마을 원장 신부가 이 마지막 시설을 ‘시몬의 집’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대목도 전해진다. 


 

10년 준비 기공식, 그리고 25억 원의 벽
 

건립은 결심만으로 되지 않는다. 김 주교는 10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고 알려졌고, 2025년 10월 말 기공식을 앞두고 생애 마지막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재원이다. 보도에 따르면 여러 동을 짓는 데 25억 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해 난관을 겪고 있다. 

 

다만 우리마을은 한 차례 기적 같은 복구를 경험했다. 2019년 화재로 콩나물 사업장이 소실됐을 때, 수천 명이 십시일반 기부해 재건에 힘을 보탰고, 타 종교 공동체까지 도움을 건넸다는 일화가 보도됐다. 

이번에도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가족이 건립비로 100만달러를 보내겠다고 했고, 퇴직한 고령의 친구가 1천만 원을 내놓았다는 사례가 뒤따랐다. 김 주교가 반복해 말하는 단어가 ‘나’가 아니라 ‘우리’인 이유다. 


 

전문가들, 탈시설 vs 시설 이분법 넘는 전환기 설계 필요

 

이 사업이 던지는 질문은 개인의 미담을 넘어 제도 설계로 이어진다. 

보건복지부는 2021년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하고, 자립지원 시범사업을 운영해 왔다(2025년 기준 참여 지자체 32개). 큰 방향은 시설 밖 지역사회지만, 현장에서는 고령·중증 발달장애인의 돌봄 공백이 전환기 리스크로 지적된다. 
 

실제 현장 연구에서는 발달장애의 ‘조기 노화’를 전제로, 40세 전후부터 중고령으로 보고 서비스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복된다. 경기도 산하 연구(욕구분석)에서도 40세 이상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중고령 범주로 정의하는 흐름이 확인된다. 

장애인 정책 연구 보고서들 또한 고령장애인이 ‘장애기간이 길고 조기노화·이차적 장애’를 겪는 특징을 짚으며, 의료·돌봄·주거가 결합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김 주교가 말하는 ‘발달장애노인 그룹홈’은 바로 그 전환기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다. 

‘정책의 큰 흐름을 수긍하지만, 과도기에는 나이가 차 떠나는 친구들이 갈 데가 없다’는 그의 말은 탈시설의 방향성과 별개로 ‘지금 여기’의 안전망을 요구하는 현장의 언어에 가깝다. 


 

마지막 소원이 공공의 과제가 되려면

 

김성수 주교의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지점은 한 성직자의 선의 때문만이 아니다. 

학교(교육)–일터(직업)–노후(돌봄)로 이어지는 생애주기 지원이 한 개인의 헌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이 늙는 시대, ‘시설이냐 자립이냐’의 구호를 넘어 개인의 장애 정도와 가족·지역 여건에 따라 다층적 선택지가 공존하도록 제도를 촘촘히 짜는 일. 김 주교의 ‘시몬의 집’은 그 과제를 한국 사회 한복판으로 끌어내는 상징적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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