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남 박사, KIST에 1억 기부…“연구 포기 없는 환경 만들고 싶었다”
![지난 14일 정일남(가운데) 박사가 김용직(왼쪽) KIST 미래재단 이사장, 오상록 KIST 원장과 함께 열린 약정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KIST]](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60522/1779452757830_103713247.jpg)
197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유치과학자로 귀국해 국내 실리콘 화학 연구를 개척한 정일남 박사가 후배 연구자들을 위해 1억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KIST 미래재단을 통해 박사후연구원과 학생연구원의 장학 사업에 사용된다.
정 박사는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KIST 본원에서 열린 기부금 약정식에서 “경제적 이유로 꿈과 연구를 포기하는 후배들이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의 기부는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끝에 내린 선택에 가까웠다.
정 박사는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3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태평양전쟁이 격화되자 가족과 함께 귀국했지만, 아버지와는 끝내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후 전남 광산 지역에 정착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과 신문 배달을 병행하며 생계를 도왔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으로 등록금을 면제받았고, 장학 제도가 잘 갖춰진 대전대학(현 한남대학교)에 진학했다. 이후 미국 유학과 박사 과정까지 이어가며 실리콘 화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와 만나게 됐다.
정 박사는 박사 학위 취득 후 미국에 남는 대신 한국행을 택했다. 당시 정부가 운영하던 유치과학자 제도를 통해 KIST에 합류했고, 국내에서는 불모지에 가까웠던 실리콘 화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KIST 재직 시절 실리콘 수지를 활용한 촉매 기술을 개발해 고순도 실리콘 생산 공정의 안정성을 높였고, 이는 KIST 최초의 미국 특허로 이어졌다. 이후 무기화학연구실장과 재료화학센터장 등을 맡으며 약 30년간 연구 현장을 지켰다. 국내외 논문 60여 편과 특허 83건도 남겼다.
정년 퇴임 이후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동시에 실리콘 소재 기업을 창업해 기술 산업화에도 뛰어들었다. 연구실 성과가 실제 산업 현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직접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기부 역시 같은 연장선에 있다.
정 박사는 앞서 한남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에도 각각 1억원의 장학금을 기부한 바 있다. 책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도 이어왔다. 오랜 시간 몸담았던 KIST에도 기부를 원했지만, 과거에는 관련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 실행하지 못했다. 이후 KIST 미래재단 설립 소식을 접하면서 뜻을 실현하게 됐다.
KIST 미래재단은 2022년 출범한 공익 재단으로, 이공계 장학 지원과 과학기술 인재 육성 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정 박사의 기부금 역시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 환경 개선과 장학 지원에 활용될 예정이다.
정 박사는 “생존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 누군가의 작은 도움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직접 경험했다”며 “받은 도움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연구 인생은 특허와 논문 숫자로만 남지 않는다.
누군가의 꿈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힘으로도 기억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