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베네수엘라 잃어버린 30년의 비극

무너진 국가 위에 덮친 대재앙 — 베네수엘라, ‘잃어버린 30년’의 비극
편집자 주
자연재해는 모든 나라를 찾아온다. 그러나 같은 규모의 재난이라도 피해의 크기는 국가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었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최근 베네수엘라를 강타한 강진은 단순한 지진이 아니라 오랜 정치·경제 실패가 어떻게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지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가 되고 있다.
한때 남미 최고의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가 왜 맨손으로 생명을 구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는지, 그 잃어버린 30년의 민낯을 살펴본다.
무너진 도시, 맨손으로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
강진이 덮친 베네수엘라 곳곳에서는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되고 수많은 주민들이 잔해 속에 갇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망자와 부상자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실종자 수 역시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구조 작업이다.
굴착기와 크레인 같은 중장비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주민들과 구조대원들은 삽과 맨손에 의지해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치고 있다.
구조의 골든타임이 흘러가는데도 장비와 연료, 의료용품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제사회는 긴급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지만, 도로와 통신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구조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자연재해가 국가 시스템의 붕괴와 맞물리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석유 부국에서 실패한 국가로
베네수엘라는 한때 세계 최대 수준의 석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였다.
풍부한 자원 덕분에 남미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좌파 정권이 장기 집권하면서 국가 운영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석유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한 경제 구조는 국제 유가 하락과 함께 무너졌고, 생산성은 급감했다. 민간 산업은 위축됐으며 기업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여기에 초인플레이션과 외환 부족, 식량난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삶은 극도로 어려워졌다.
국제기구들은 수백만 명의 국민이 생계를 위해 국외로 떠난 것을 현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난민 이동 가운데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재난을 키운 것은 지진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붕괴
이번 지진이 특히 큰 피해를 낳은 이유는 단순히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병원은 오래전부터 의료장비 부족에 시달렸고, 전력 공급은 불안정했다.
구조 장비는 노후화됐고, 지방정부의 재난 대응 체계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몇 시간 안에 투입됐어야 할 중장비와 응급 의료체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인명 피해는 더욱 커졌다.
전문가들은 “재난은 자연이 만들지만 참사는 준비되지 않은 국가가 만든다”고 지적한다.
이번 지진은 건물만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방치된 국가 시스템의 허약함까지 그대로 드러냈다.
국민이 떠난 나라, 남겨진 사람들의 눈물
경제난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와 전문 인력은 이미 해외로 떠났다.
의사와 간호사, 기술자, 엔지니어의 대규모 이탈은 국가의 회복력을 더욱 약화시켰다.
이번 재난 현장에서도 전문 구조 인력 부족은 치명적인 문제로 나타났다.
가족들은 맨손으로 잔해를 치우며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있고,
생존자들은 식수와 전기, 의약품 부족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재난은 모든 국민에게 닥쳤지만, 가장 큰 고통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이 남긴 교훈
국가는 평상시에 준비한 만큼 재난을 견딘다. 경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와 행정 시스템이 약화되면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국민의 안전이다.
베네수엘라의 비극은 단순히 한 나라의 실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 경쟁력은 경제 성장뿐 아니라 재난 대응 능력과 공공 시스템, 의료 인프라, 사회적 신뢰가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지진은 몇 분 만에 도시를 무너뜨렸지만, 그 피해를 키운 것은 수십 년 동안 누적된 국가 시스템의 붕괴였다.
자연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시련을 주지만, 그 시련을 이겨내는 힘은 결국 국가의 준비와 국민을 위한 제도에서 나온다.
베네수엘라의 아픈 현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나라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뼈아픈 경고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