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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 | 안톤 체홉의 “갈매기”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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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멀리서 날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상처 받았다고 인생이 끝난것은 아니며, 실패 했다고 꿈의 자격마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희망이란 멀리서 날아오는 행운이 아니라 눈물을 닦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작은 용기인지 모른다.

빛을 잃은 소녀여, 희망은 아직 있다 — 체홉 『갈매기』가 건네는 삶의 위로

 

안톤 체홉의 『갈매기』는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꿈이 부서진 뒤에도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이다. 

 

무대에 서기를 꿈꾸는 소녀 니나와 새로운 예술을 갈망하는 작가 지망생 뜨레쁠료프, 성공한 작가 뜨리고린과 배우 아르카지나가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며 상처를 주고받지만, 체홉이 끝내 바라보는 것은 사랑의 성취가 아니라 실패 이후 인간이 선택하는 삶의 방향이다. 작품 속 갈매기가 자유와 꿈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상처받고 희생되는 존재가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니나는 호숫가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처럼 배우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동경하던 작가 뜨리고린과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고, 아이를 잃으며 배우로서도 혹독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다. 한때 눈부셨던 소녀의 삶은 그렇게 빛을 잃는다. 

 

그런데 체홉은 바로 그 폐허에서 뜻밖의 희망을 발견한다. 마지막에 돌아온 니나는 더 이상 세상의 박수와 명성을 꿈꾸던 철없는 소녀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명예도 영광도 아니라 견디어 내는 힘과 믿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무대를 향해 떠난다. 

 

여기에서 『갈매기』는 철학적인 작품이 된다. 인간의 가치는 얼마나 많이 성공했느냐보다 실패한 뒤에도 자신의 삶을 계속 살아갈 수 있느냐에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삶을 긍정하는 인간을 고통까지도 자신의 운명으로 끌어안는 존재로 바라보았다면, 니나 역시 상처를 지우지 않은 채 그것을 품고 앞으로 걸어간다. 

 

반면 뜨레쁠료프는 사랑과 예술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절망을 끝내 견디지 못한다. 같은 고통 앞에서 한 사람은 무너지고, 다른 한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난다. 그 대비가 『갈매기』의 가장 아픈 질문이다.

 

우리 시대에도 수많은 ‘니나’가 살아간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 관계의 상처로 마음을 닫은 사람, 오랫동안 준비한 꿈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 인생의 후반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허무하게 바라보는 사람까지, 우리는 때때로 자신에게서 빛이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체홉은 화려한 기적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삶은 빛나기 때문에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가기 때문에 다시 빛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백여 년을 건너온 『갈매기』의 마지막 메시지는 오늘 더욱 따뜻하다. 상처받았다고 인생이 끝난 것은 아니며, 실패했다고 꿈의 자격까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희망이란 멀리서 날아오는 행운이 아니라, 눈물을 닦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작은 용기인지 모른다.

 

빛을 잃은 소녀여,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날개가 상처 입었다고 하늘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므로.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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