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힝야 난민 지원에 목소리 높여야

방글라데시 난민촌의 끝나지 않은 고통

미얀마 군부의 집단학살 이후 8년이 지났지만,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의 로힝야 난민촌은 여전히 인도적 위기 속에 놓여 있다. 현재 약 100만 명의 로힝야족이 난민촌에서 생활하며, 국경없는의사회(MSF)는 1992년부터 긴급구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 단체는 2009년 설립된 쿠투팔롱병원을 비롯해 8곳의 의료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진료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순회 진료팀도 파견 중이다. 그러나 난민촌은 23개에 달해, 여전히 의료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건 위기: C형 간염 확산

특히 보건 위기는 심각하다. 지난해 발표된 조사에 따르면, 콕스바자르 난민 성인의 약 20%인 8만 6천 명이 C형 간염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제대로 된 치료 시설이 부족해 일부 난민들은 민간 치료사에게 의존하는데, 소독하지 않은 바늘을 여러 사람에게 반복 사용하면서 감염이 확산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재 난민 3만여 명을 대상으로 대규모 검사와 치료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확산 차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성과 아동에게 더 가혹한 현실

난민촌 여성들의 삶은 더욱 위태롭다. 물이나 식량을 구하거나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피해 여성들을 위한 의료·심리 치료를 중점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아동과 성인 모두가 전쟁과 학살의 트라우마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 정신건강 지원도 필수적인 상황이다.

무국적자라는 근본 문제

국경없는의사회 국제본부 의료활동 총괄 마리아 게바라는 “문제의 본질은 로힝야족이 무국적자라는 것”이라며 “교육, 직업은 물론 난민촌 내에서조차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를 빼앗긴 상황에서는 어떤 구호도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본적인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국제사회의 원조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와 한국의 역할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등 다른 분쟁 지역에도 큰 규모의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등 기존 주요 원조국의 지원금이 줄어들면서 리더십 공백이 생겼고, 새로운 지원 주체가 절실한 상황이다. 

게바라 총괄은 “경제 규모 12위의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더 큰 기여와 리더십을 보여줄 때”라며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인 한국이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고 인도적 지원을 선도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