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정치
사회

사는 게 허전하다, 잊혀지는 게 두렵다

류재근 기자
입력
관계와 존재감으로서의 어르신 자리
지금의 어르신들이 겪고 있는 서운함과 소외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 모두가 마주할 현실일 수 있다.

 

[어버이날 기획]

 

“살아는 있지만 잊혀진 듯”

 

 초고령 사회, 어르신들의 깊어지는 서운함

경제적 빈곤보다 더 아픈 ‘관계의 단절’

“외로운 게 아니라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 존재감 잃어가는 노년의 현실
 

 

고독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서운함’이었다.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어르신들의 삶은 단순히 경제적 빈곤이나 외로움이라는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생활 수준은 과거보다 높아졌고 의료 기술도 발전했지만, 정작 많은 노년층은 “사는 게 허전하다”는 감정을 토로한다. 

전문가들은 이제 노인 문제를 단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와 존재감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경로당에서 만난 70대 김모 씨는 “자식들이 불효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다들 바쁘다 보니 연락이 뜸해지고, 내가 세상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젊을 때는 회사에서도 찾고 가족들도 의지했는데 

지금은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없는 날도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노년층의 가장 큰 상실감은 단순한 혼자가 아니라 ‘역할의 축소’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직장을 떠난 뒤 사회적 관계가 줄어들고, 자녀 세대 역시 생계와 육아에 치이다 보니 부모와의 관계는 점차 ‘필수적 관계’에서 ‘가끔 연락하는 관계’로 변해간다. 

그 과정에서 어르신들은 자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처럼 느끼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의 노년 세대는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참는 문화 속에서 살아온 경우가 많다. 

“괜찮다”, “신경 쓰지 마라”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깊은 서운함이 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크게 받거나 가족 간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노년층의 정서 문제를 지나치게 개인의 성격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관계 단절과 존재감 상실은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이 증가하면서 정서적 고립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1인 노인가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단순히 식사를 해결하고 병원을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 정기적인 소통과 사회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공동 식사 프로그램과 문화 활동, 디지털 교육 등을 확대하며 노년층의 사회적 관계 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스마트폰 교육에 참여한 한 80대 어르신은 “영상통화라도 배우니 손주 얼굴을 자주 보게 돼 마음이 덜 외롭다”고 말했다. 작은 연결이 삶의 활력을 되찾게 하는 셈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적인 관심과 존중이라는 것이다. 

노년층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효도나 경제적 지원만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존재를 기억해 주며  사회 안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사람으로 대우받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언젠가 모두 노인이 된다. 

지금의 어르신들이 겪는 서운함과 소외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 모두가 마주할 현실일 수 있다. 

초고령 사회의 진짜 과제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류재근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