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종묘, 도시의 기억을 지키는 일은 오늘을 위한 투자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조선 왕조의 역사를 품은 종묘는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다. 국가의례가 치러지던 성소이자, 600년 수도 서울의 시간과 가치가 켜켜이 쌓인 정신적 축이다.
그러나 이 종묘를 둘러싼 세운상가 일대의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역사와 도시의 공존‘이라는 오래된 고민이 다시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운상가는 1960년대 한국의 근대화·산업화 상징으로 출발해 전자산업의 심장으로 성장했으나, 1990년대 이후 경쟁력 약화와 노후화로 쇠퇴를 겪었다.
시는 오랫동안 정비·재생 계획을 반복해 왔고, 최근에는 고층 개발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기조가 바뀌면서 주변 시민사회와 문화·도시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그 경관·무형적 가치·의례 공간성은 건물 높이, 거리감, 조망권 변화에 민감하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발과 보존의 충돌이 찬반 구도로 단순화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러나 종묘의 의미는 단지 과거의 유산을 보존하는 수준이 아니다. 왕실 제례악과 종묘제례는 공동체 질서·전통·예(禮)의 가치를 현대사회에 되살리는 중요한 문화사회적 자산이며,
종묘 일대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역사적 층위를 가장 밀도 있게 보여주는 드문 장소다.
이러한 공간적 맥락이 훼손된다면, 이는 단순히 ‘조망이 가려진다’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 역사적 신뢰도를 잃는 일과 맞닿는다.
세운 재개발이 가진 또 다른 현안은 지역 상인과 장인의 생태계다. 이곳에서 수십 년간 생계를 이어온 소규모 기술 장인들은 개발 속도와 대규모 자본 구조에서 밀려날 위험에 놓여 있다.
종묘 보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도심 산업의 소규모 생태계를 유지하며 사라지는 기술을 지키는 문제다. 도시가 한꺼번에 새것으로 바뀌는 순간, 다양한 시간이 공존하는 서울의 고유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발과 보존 중 하나를 택하는 이분법이 아니라 조절된 높이·조망권 보호·이동 동선 계획·상생형 재생이라는 세밀한 도시정책의 균형이다.
해외 주요 도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역사 핵심지대 주변의 스카이라인을 법적으로 엄격히 통제하고 있으며, 문화유산의 경관권을 공공 자산으로 본다.
이는 도시 경쟁력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장기적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묘는 과거가 아니라 오늘을 지탱하는 뿌리이며, 세운상가는 산업과 기술의 기억을 품은 근대의 상징이다.
이 두 공간의 조화로운 미래는 서울이 어떤 도시가 되고자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도 같다.
도시의 시간은 단절이 아니라 축적을 통해 깊어진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 세대에게 ‘지켜낼 가치’를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