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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어르신들, ‘내 생애 마지막 기부’로 청년과 이웃을 품다

산타뉴스 이성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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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축복, 가지고 가는 게 아니라 나누는 겁니다”

작은 돈에서 시작된 큰 물결

 

서울 종로의 한 모임에는 평균 75세 노인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이라 부른다. 

폐지 줍기, 지하철 택배 같은 노인 일자리로 번 돈을 모아 기부를 이어가는 공동체다.

처음은 청년 전세자금 200만 원 지원이었다. 지금은 1000만 원 규모로 커졌고, 자립준비 청년과 위탁가정 아동들을 위해 3600만 원을 후원했다. 열아홉 살에 보육원을 나온 아이들이 “돌아갈 집 하나는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달 모은 청약금이다.


 노인이 노인을 돕는 ‘노-노 케어’

 

회원들은 청년뿐 아니라 또래 노인들을 위해서도 힘을 보탰다. 동부시립병원을 통해 생활이 어려운 노인의 의료비를 지원했고, 이후 장애인·노숙인까지 지원 범위를 넓혀 지금까지 2200만 원을 기부했다.

또, 사채 피해자들을 돕던 단체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매달 25만 원을 모아 지원했다. 그 덕분에 사무실 불이 다시 켜지고, 피해자들이 기댈 마지막 버팀목이 살아났다.


 돈보다 값진 선물, 꿈을 이루어주다

 

기부는 돈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평생 피아노 선생님으로 살았지만 전공자가 아니라 독주회를 열지 못한 어르신을 위해, 회원들은 작은 카페를 빌려 독주회를 열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한 어르신은 말했다.
“지금 여기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나의 마지막 주소는 여기입니다.”

함께한 회원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답했다.
“우리의 마지막 주소는 서로입니다.”


 투명하게, 끝까지

 

유명 단체들이 모금액의 일부를 운영비로 쓰는 것과 달리, 이 모임은 기부금의 96%를 그대로 전달한다. 규모가 작고 자원봉사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홈페이지 유지 관리비 등 최소 비용만 제외된다.

 

작은 불빛이 되는 마지막 기부

 

“우리는 가난하지만, 더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르신들의 고백이다. 폐지 줍는 손에서 나온 천 원, 지하철을 오르내린 발걸음에서 나온 이천 원이 모여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

세대 갈등이 짙어지는 현실 속에서도, 노인들의 마지막 기부는 청년에게 집을, 노인에게 병원비를, 이웃에게 희망을 남긴다. 죽음을 준비하기보다, 마지막까지 나눔을 선택한 이들의 불빛이 지금도 세상을 비추고 있다.
 

 

 

이성로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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