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게, 우리가 지킵니다”…파푸아뉴기니 한인회, 4천400명 전쟁 희생자 위한 ‘기억의 닻’
![라바울에 세운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추모탑' [사진제공 파푸아뉴기니 한인회]](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51010/1760049642635_352061681.jpeg)
“태평양전쟁 당시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에서 희생된 한인 선조가 약 4천400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분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 그건 바로 우리 후손의 책임입니다.”
8일, 재외동포청이 주최한 ‘2025 세계한인회장대회’ 현장에서 만난 심민섭 파푸아뉴기니 한인회장의 목소리에는 굳은 다짐이 묻어 있었다. 그는 20여 년 전 낯선 땅으로 건너가 현지 사회에 뿌리내린 교민이자, 지금은 선조들의 넋을 기리는 ‘기억의 지킴이’다.
“라바울 추모탑은 우리 기억의 닻입니다”
심 회장이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태평양전쟁 한인 희생자 추모탑’이었다.
라바울은 과거 일본 해군의 주요 거점으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군인·노무자·위안부로 강제 동원돼 생을 마감한 비극의 땅이다.
지난해 한인회의 주도로 세워진 이 추모탑은 단순한 기념비가 아니라,
“조국의 이름으로 외롭지 않게 잠들게 해주는 닻”이 되었다.
그는 “정기적인 추모제와 기록 관리, 현지 안내문 정비를 꾸준히 이어가겠다”며 “후손들이 ‘그곳에도 조선의 혼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겠다”고 말했다.
의료·문화·공공외교…“보이는 한인회로 거듭날 것”
심 회장은 단지 추모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현지 사정을 개선하기 위해 구조단과 MOU를 체결하고, 한국의 의료기관과의 협력도 추진 중이다.
“의사 파견이나 단기 의료봉사 연계도 모색 중입니다. 생명을 살피는 일은 곧 인류애의 실천이니까요.”
또한 그는 문화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를 중요한 축으로 제시했다.
내년 3월에는 사물놀이 공연단 초청을 계획 중이며, 이후에는 ‘K-푸드 페스티벌’과 전통예술 행사로 확장할 뜻을 밝혔다.
“작은 행사라도 계속 쌓이다 보면, 한국과 파푸아뉴기니 사이에 진짜 ‘온기’가 오갈 겁니다.”
“활동이 있어야 지원도 있습니다”
그는 대양주 지역 네트워크 합류를 계기로, 한인사회에 더 넓은 문을 열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배운 건 단순합니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처럼, 먼저 나서야 도움도 옵니다. 이제 우리도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자원 풍요의 땅, 연결의 기회
파푸아뉴기니는 천연가스·금·구리 등 풍부한 자원을 지닌 나라다.
심 회장은 “한국 기업과의 교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며 “한인회가 그 가교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이끄는 중견 건설사는 현재 700명 규모로 성장해, 현지 항만·발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의 성장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건 ‘사람’입니다. 한인회는 이 두 길을 함께 걸어가려 합니다.”
“선조의 희생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 곧 우리의 내일”
라바울의 뜨거운 햇살 아래 서 있는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추모탑’.
그 앞에서 현지 한인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그들의 기도는 단지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약속이다. 심 회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라바울 추모탑은 우리 기억의 닻입니다.
선조들의 이름이 잊히지 않도록 기록을 지키고,
의료·문화·공공외교로 ‘보이는 한인회’를 만들겠습니다.”
그의 다짐은 머나먼 남태평양에서도 여전히, 한민족의 온기와 책임을 증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