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맛 나는 세상

‘착한가게’의 확산, 작은 나눔이 만드는 따뜻한 경제공동체
‘매출의 1%를 어려운 이웃에게 돌려드립니다’
서울 강북의 한 제과점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이른바 ‘착한가게(Kind Store)’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빵집이지만, 매달 일정 금액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에 기부하며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전국적으로 이런 ‘착한가게’들이 조용히 늘고 있다. 대기업의 거창한 사회공헌과는 다른, 생활 속의 나눔이자 착한 소비 운동의 중심에 선 것이다.
■ 소상공인의 참여로 확산되는 ‘착한가게’ 운동
‘착한가게’는 지역 복지기관이나 사랑의열매를 통해 등록되는 자발적 기부가게다. 매출의 일부를 정기적으로 기부하거나, 특정 상품 판매 수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한다.
2007년 대구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전국으로 퍼져 현재(2025년 기준) 약 3만 5000곳이 등록돼 있다. 음식점, 미용실, 세탁소, 편의점, 꽃집, 병원 등 업종도 다양하다.
서울 종로구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62) 씨는 “손님이 많지 않은 날도 있지만, 이웃이 힘든데 나만 잘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5년째 착한가게를 이어가고 있다”며 “가게에 붙은 빨간 하트 스티커를 보며 손님들도 따뜻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착한가게 등록 이후 매출이 평균 5~10% 증가한 사례도 보고됐다. 지역 주민들이 ‘착한가게’ 로고를 보고 의식적으로 소비를 선택하는 것이다. 나눔이 단순한 선행을 넘어 지역 상권의 신뢰 자산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 기부문화의 생활화, 나눔의 선순환 확산
‘착한가게’ 운동은 대기업 중심의 사회공헌 구조에서 벗어나, 일상 속 나눔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인 자영업자나 소규모 점포들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기부금액 기준을 낮추고, 지역사회 복지시설과 직접 연계하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예컨대 부산 사하구의 한 세탁소는 매달 3만 원씩 기부하며 독거노인 세탁봉사를 병행하고, 강릉의 한 카페는 매출 일부로 결식아동 도시락을 후원한다. 또한 전남 순천의 ‘착한미용실’은 청소년 무료 이발 서비스를 1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금전적 후원뿐 아니라 재능기부형 착한가게도 늘고 있다. 수리점이 저소득층 가전 수리를 무상 지원하거나, 사진관이 취업 준비생의 증명사진을 무료로 촬영해주는 등, 각자의 전문성을 활용한 사회공헌 모델이 등장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착한가게는 단순한 기부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관계망을 회복하는 참여형 복지 운동”이라며 “기부를 통해 상인과 주민, 복지기관이 연결되는 공동체적 가치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지역경제와 공동체 복원의 힘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들이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시기에 ‘착한가게’ 등록은 오히려 늘었다. 이는 공동체 회복에 대한 시민 의식의 성장을 보여준다. 힘들수록 함께 버티자는 연대의식이 경제활동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단순한 선행을 넘어 지역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사회적 자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한다.
나눔의 신뢰가 쌓이면 상권은 더욱 건강해지고, 주민은 지역상점을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인식한다. 실제로 충남 논산시의 한 전통시장은 ‘착한가게 거리’를 조성해 지역 복지기금과 연계하고 있으며, 이는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경제학자인 이모 교수는 ”착한가게는 소상공인 중심의 풀뿌리 사회공헌 모델로, 지역 내 경제적 순환과 신뢰를 동시에 키우는 역할을 한다”며 “이런 작은 나눔이 모여 사회 전체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 착한 소비로 이어지는 시민의식 변화
이제 착한가게 운동은 소비자들의 참여로 완성된다. 소비자들이 물건을 고를 때 ’이 가게는 기부를 한다’는 이유로 선택한다면, 이는 기부의 동력이 된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착한소비 챌린지, 착한영수증 SNS 인증 캠페인 등이 확산되며 자발적 참여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
한 30대 직장인은 “커피 한 잔을 사도 그 수익 일부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분이 좋다”며 “이제 소비는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나눔의 행위가 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착한 소비의 흐름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시민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기업 차원의 제도라면, 착한가게는 시민과 상인이 함께 만드는 생활 속 ESG인 셈이다.
■ 작은 나눔이 만드는 큰 울림
착한가게의 성공은 거창한 캠페인이 아닌, 작은 나눔의 지속성에 있다. 하루 1천 원, 한 달 몇 만 원의 정기기부가 모여 수많은 이웃의 삶을 바꾼다.
나눔은 결코 부자의 특권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선택으로도 충분히 실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회학자 정모 박사는 “착한가게 운동은 우리 사회가 경쟁 중심에서 공존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현상”이라며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이런 따뜻한 연대의 문화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착한가게’는 단순한 간판이 아니라, 나눔이 일상이 된 사회의 얼굴이다.
익명의 선행이 모여 도시의 공기를 바꾸고, 이웃 간의 거리를 좁힌다. 작은 상점 하나의 선한 마음이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