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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인술, 아프리카에 희망을 심다

산타뉴스 이성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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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실 수녀, “봉사도 헌신도 아닌 신이 주신 소명”
정춘실 성 데레사 진료소장이 케냐에서 환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아산사회복지재단]
정춘실 성 데레사 진료소장이 케냐에서 환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아산사회복지재단]

아프리카 케냐의 작은 농촌 마을 칸고야. 전기가 자주 끊기고, 의료 시설조차 드문 그곳에서 지난 25년 동안 한결같이 환자 곁을 지켜온 이가 있다. 제37회 아산상 수상자 정춘실(59) 성 데레사 진료소장이다.

 

정 소장은 2000년부터 케냐와 말라위에서 저소득층과 소외된 이웃을 위해 의료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이번 수상 제안을 처음엔 거절했다고 한다. “세상에 드러나는 일이 두려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곁을 지키던 한 수녀가 건넨 “신이 주신 선물일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을 열었다. 정 소장은 “아산상은 칸고야 진료소를 위한 신의 선물”이라며, 상금 3억 원 전액을 진료소 완공에 쓰겠다고 밝혔다.

 

‘숨은 길’이 아닌 ‘소명으로 택한 길’

 

정춘실 소장은 수상 소감에서 “제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봉사도, 헌신도 아닌 성소이자 소명”이라고 단언했다. 인천에서 태어나 고교 시절부터 사회적 약자를 향한 관심을 키운 그는, 1995년 영국에서 종신서원을 하며 수녀가 됐다. 이후 간호학을 공부해 1999년 자격을 취득했고, 곧장 아프리카로 향했다.

2003년에는 의료 공백지대였던 케냐 키텐겔라에 성 데레사 진료소를 세웠고, 말라위에서는 ‘음땡고 완탱가 병원’을 이끌며 의료 체계를 정비했다. 의료와 행정을 함께 세워야 진정한 ‘지속 가능한 생명 살리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저를 써주는 이들이 오히려 은인”

 

정 소장은 “저를 아낌없이 써주는 가난한 이들에게 감사드린다”며 환자들에게 고마움을 돌렸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칸고야 마을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준 것은 세상의 기적”이라는 말 속에는, 그동안 이어온 길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힘으로 지켜낸 것임을 담았다.

 

아산상, 더 넓어진 나눔의 울림

 

올해 아산상에서는 또 다른 빛나는 이웃들이 함께 선정됐다. 26년간 개발도상국 심장병 아동 844명에게 무료 수술을 집도한 김웅한 서울대 의대 교수가 의료봉사상을, 27년간 노숙인과 고립 청년의 회복을 돕는 데 헌신한 김현일·김옥란 부부가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이 외에도 복지실천상, 자원봉사상, 효행·가족상 등 각 부문 수상자 15명에게 총 10억 원 규모의 상금이 수여된다.

 

“빛과 희망을 심는 길”

 

정춘실 수녀가 지켜온 길은 화려하지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길은 분명 한 생명을, 한 마을을 살려내는 길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봉사나 헌신이 아니라, 소명으로 걸어온 25년은 결국 수많은 이들에게 ‘살아낼 이유’를 선물했다.

오는 11월 25일, 서울 송파구 아산병원 강당에서 열릴 시상식은 단순한 상의 자리가 아닌, ‘세상에 빛을 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성로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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