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맞아 ‘치욕의 역사’ 다시 마주하다

전 명성황후 초상(傳 明成皇后肖像), 조선 말기, 비단에 채색, 66.5x48.5cm, 179x70cm. 다보성갤러리 제공.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흔적을 되돌아보는 특별 전시가 서울 다보성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9월 30일까지 이어지며, 한국인이라면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물증들이 대거 공개됐다.
화려한 궁중 복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치마 밑으로 보이는 가죽신, 의자에 새겨진 서양식 당초문양, 그리고 옷감의 세밀한 문양을 통해 많은 연구자들이 이 그림을 명성황후의 초상으로 보고 있다.
이 그림과 함께 공개된 또 다른 유물은 명성황후 시해의 주범이었던 미우라 고로의 친필 묵서다.
그는 1895년 을미사5변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본국으로 소환됐으나, 일본 내에서는 오히려 원로 정치인으로 대접을 받았다.
은퇴 후에는 ‘맑은 물과 밝은 달’을 주제로 한 한적한 글을 남기며 생을 마감했다. 이 대조적인 행적은 역사적 비극과 당시 국제 정치의 모순을 잘 보여준다.
일제 침탈을 기록한 문서와 인장
1907년 군대 해산과 내정 간섭을 본격화한 ‘한일 신협약’을 기념하는 서화첩도 이번에 공개됐다.
이토 히로부미, 이완용 등 협약 체결의 핵심 인물들이 남긴 합작 시가 수록돼 있으며, 당대 서화가들의 그림도 함께 실려 있다.
더욱 눈길을 끄는 전시품은 1910년 강제병합 직후 초대 조선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인장이다.
인장에는 ‘메이지 43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사자의 얼굴과 한반도 지형을 닮은 꼬리 부분이 함께 표현돼 있다.
이는 총독 자신을 조선의 지배자로 상징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독립운동가들의 글과 다짐
치욕의 역사 속에서도 희망을 지켜낸 독립운동가들의 흔적도 함께 전시된다.
1907년 헤이그 특사로 파견됐다 순국한 이준 열사의 친필 글이 소개되며,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되기 직전 설날 아침에 남긴 ‘조국광복’의 김선원 서예가는 “광복 후 80년 동안 이 같은 기록물들이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적으로 매우 소중하다”며, 후세에 전해야 할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전시를 마련한 다보성 갤러리의 김종춘 대표는 “유물은 시간을 잇는 다리이자 기억을 지키는 그릇입니다. 이번 전시가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광복의 기쁨이 있던 1945년 이후 80년이 흘렀다. 이번 전시는 우리에게 남겨진 상처와 희망을 동시에 보여주며, 역사를 기억하는 일이 미래를 준비하는 길임을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