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팔이 24시간 진단”…씨젠, 무인 PCR 자동화 시스템 ‘큐레카’ 공개

진단 전문 기업 씨젠(Seegene)이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진단검사의학회 ‘ADLM 2025(구 AACC)’에서 획기적인 진단 기술을 선보였다.
씨젠이 이번 학회에서 공개한 무인 자동화 PCR 진단 시스템 ‘큐레카(QurekA)’는 대변, 소변, 혈액, 객담 등 다양한 고난도 검체를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완전 자동으로 검사할 수 있는 최첨단 장비다.
씨젠의 천종윤 대표(회장)는 “큐레카 한 대의 도입으로 미국 검사 전문 인력 2명의 연봉 수준의 비용으로 24시간 무인 진단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며 “검사실의 반복적인 수작업을 최소화하고, 인력은 연구와 의사결정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로봇팔이 직접 움직이는 검사실…‘사람 없는 검사’ 실현
큐레카는 샘플 수집, 보관, 전처리, 핵산 추출, 증폭, 분석까지 PCR 검사 전 과정을 기계가 자동으로 수행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처리 자동화다. 기존에는 검사자가 수작업으로 덩어리진 검체를 풀고 혼합·분리하는 과정을 직접 해야 했지만, 큐레카는 점성이 높은 검체도 로봇팔이 자동으로 분류하고 처리한다.
이번 학회 현장에서는 실제 로봇팔이 검체를 채취한 뒤, 표준 튜브에 옮기고 원심분리까지 수행하는 전 과정이 시연됐다. 이 장비는 사람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휴먼 에러’가 발생할 가능성도 현저히 낮다. 또한 검사 인력의 근무 시간과 무관하게 24시간 중단 없는 진단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병원, 연구소, 공공기관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는 진단 생태계 전체를 설계하는 시대”
씨젠은 큐레카를 단순한 기계 장비가 아닌, 미래 진단 플랫폼의 중심축으로 보고 있다. 천 대표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대개 수익성이 높은 분석단계에만 집중하지만, 우리는 진단의 시작점인 전처리에서부터 고객을 확보하고, 이후의 분석 장비·시약 판매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씨젠은 이 시스템이 PCR뿐만 아니라 생화학, 면역진단 분야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밝히며, 차세대 진단 자동화의 기준을 새롭게 세우겠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더불어 씨젠은 자사의 핵심 기술을 해외 진단 기업들과 공유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PCR 기술과 시약 자동화 시스템(SGDDS)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각국의 감염병 특성에 맞춘 맞춤형 진단 제품을 공동 개발할 수 있도록 협력의 장을 열겠다는 것이다.
천 대표는 “우리가 모든 것을 혼자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기술이 진정한 글로벌 표준이 되기 위해선 다양한 기업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며, “씨젠은 시작점만 제공하고, 이후 진단 생태계는 글로벌 파트너들과 함께 성장시키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감염병 트렌드도 한눈에…빅데이터 기반 통계 플랫폼 ‘스타고라’ 연동
큐레카는 검사 결과만을 도출하는 장비에 그치지 않는다. 씨젠은 진단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통계 분석 플랫폼 ‘스타고라(StarGora)’도 함께 공개하며 진단 업계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스타고라는 병원에서 수집된 PCR 검사 데이터를 분석해 감염병의 지역별 유행 양상, 병원 간 양성률 비교, 다중 감염 패턴 등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의료진은 단순 검사 수치 이상의 정보를 바탕으로 보다 정밀한 임상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천 대표는 “스마트폰이나 전기차가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듯, 큐레카와 스타고라는 진단의 방식 자체를 바꾸게 될 것”이라며, “단순히 검사 결과를 넘기는 시대에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진단 전략을 세우는 시대로의 전환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가정용 ‘만능 진단기’도 준비 중…개인 건강관리 시대 연다
씨젠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개발 중인 ‘PDX(Personalized Diagnostic System)’는 가정에서도 손쉽게 진단할 수 있는 개인 맞춤형 플랫폼이다.
기존의 ‘PoC(Point of Care)’ 진단이 소량 검사와 제한된 항목에만 적용되던 데 반해, PDX는 수천 종의 시약을 활용해 사람은 물론 반려동물, 식물, 식품까지 진단할 수 있는 ‘만능 진단기’를 지향한다.
천 대표는 “PDX를 2~3년 내에 전자레인지 크기로 소형화해 동네 병의원과 가정에 보급하는 것이 목표”라며 “미래에는 집 안에서 가족 건강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식품이나 반려동물까지 한 기계로 진단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비전을 밝혔다.
■미래의 검사실은 ‘무인’, 진단은 ‘생활화’
씨젠이 이번에 공개한 큐레카와 PDX는 단순한 제품이 아니다. 그것은 반복적인 수작업과 인력 중심의 전통적인 검사 체계를 벗어나, 진단이 자동화되고 생활화되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이기도 하다.
진단 분야의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협업 확대를 통해 씨젠이 그리는 미래는 분명하다. 검사실은 로봇팔이 일하는 ‘무인 공간’이 되고, 집 안에서는 누구나 버튼 한 번으로 자신의 건강을 진단할 수 있게 되는 것. 씨젠의 기술은 이제 단순히 정확한 진단을 넘어서,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진단할 수 있는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