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입국 창구에서 법정까지…이주민들이 마주한 한국 사회의 문턱

한국인이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던 시절, 우리는 그것을 ‘아메리칸 드림’이라 불렀다.
낯선 공항에 내려 서툰 영어로 서류를 작성하고, 이민국 창구 앞에서 긴장한 얼굴로 체류 자격을 설명하던 모습도 그 꿈의 일부였다.
비자가 거절될까 걱정하며 같은 서류를 여러 번 확인하던 기억 역시 낯선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의 공통된 풍경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주민들도 비슷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다만 그 무대가 미국 이민국이 아니라 한국의 출입국사무소와 노동 현장,
그리고 법정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최근 출입국·외국인청을 둘러싸고 일부 담당 공무원의 고압적 응대와 재량 중심 민원 처리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됐다.
외국인들은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지 몰라 여러 기관을 오가고, 담당자마다 달라지는 설명 앞에서 혼란을 겪는다고 말한다.
주한 대사관에서 안내받은 내용과 실제 출입국 현장에서 요구되는 서류가 다른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언어와 제도 모두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들은 작은 실수 하나에도 체류 자격이 흔들릴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반면 현장 공무원들 역시 과중한 민원 업무와 부족한 인력 문제를 호소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78만여 명으로 역대 최대 수준까지 늘었지만,
이를 감당할 행정 시스템은 아직 충분히 촘촘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문제는 그 사이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 쉽게 위축된다는 점이다.
태국인 이주노동자 나콤(가명) 씨 사례는 그 현실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이 소송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1심에서 패소했고, 뒤늦게 통장 압류를 통해 약 1300만 원 상당의 채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어와 법률 절차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결국 법정에 제대로 서보지도 못한 채 ‘패소자’가 됐다.
재판은 공시송달 방식으로 진행됐다.
법적으로는 가능한 절차였지만, 당사자가 실제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는지까지 보장해 주지는 못했다.
뒤늦게 추완항소를 통해 다시 재판을 받게 됐지만, 이 과정은 이주노동자들이 제도 안에서 얼마나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우리는 종종 외국인 노동자를 숫자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숫자 안에는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새벽부터 일하는 사람, 비자 연장을 걱정하며 서류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사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질문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과정에서 이주민 곁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무료 법률 상담을 이어가는 변호사들, 노동 현장을 오가며 통역과 상담을 돕는 활동가들, 지역에서 생활 적응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들이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누군가에게는 체류와 생계를 좌우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이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보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예측 가능한 제도인지도 모른다.
사전에 서류를 확인할 수 있는 창구, 언어 장벽을 줄이는 통·번역 시스템, 그리고 최소한 사람을 위축시키지 않는 행정 응대 같은 변화들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에 들어섰다. 출입국 창구에서, 건설 현장에서, 학교와 거리에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낯선 나라에서 길을 묻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만약 우리가 타국에서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가장 먼저 바라는 것도 거창한 친절은 아닐 것이다. 단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설명과,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태도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