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DNA만 정밀 타격…새로운 유전자 가위 항암법 등장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기초과학연구원(IBS) 공동 연구팀이 암세포만을 겨냥해 DNA를 절단하고 제거하는 차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암 치료의 정밀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존 유전자 가위의 한계
그동안의 CRISPR(크리스퍼) 기반 항암 전략은 암세포 DNA의 "이중 나선(double strand)"을 동시에 절단하는 방식이 주류였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20개 이상의 유전자 가위를 한꺼번에 주입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정상 세포의 DNA까지 손상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전달 과정의 까다로움도 임상 적용의 걸림돌이었다.
새로운 접근: 한 가닥만 잘라도 충분
이번 연구팀은 발상을 전환했다. DNA 이중 나선 중 한 가닥(single strand)만 절단해도 암세포를 사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필요한 유전자 가위의 수가 20개 이상에서 단 4개로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 기술의 핵심에는 PARP 단백질 억제제가 있다. PARP는 손상된 단일 가닥 DNA를 복구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억제제를 투여하면 이 복구 과정이 차단되며, 단일 가닥 절단이 결국 이중 가닥 절단으로 이어져 암세포가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더 넓어진 치료 적용 범위
PARP 억제제는 원래 BRCA 유전자 변이를 가진 일부 환자(특히 난소암·유방암)에만 효과가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유전자 가위와 PARP 억제제를 병용하면 BRCA 변이가 없는 암세포도 효과적으로 사멸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실험 결과, 대장암 환자의 암세포를 기반으로 만든 오가노이드(장기 유사체)에서 성장이 크게 억제되었고, 대장암 세포를 이식한 생쥐 모델에서는 6주 만에 종양 크기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효과가 확인됐다.
방사선 치료와의 시너지
연구팀은 또 다른 응용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방사선은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의 DNA까지 손상시킨다는 한계가 있는데, 이번 기술과 병행하면 저용량 방사선만으로도 높은 항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부작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으로 이어진다.
연구 의의와 전망
연구팀은 “이번 기술은 단독 치료는 물론, 표적 항암제나 방사선과 병행할 때 더욱 큰 효과를 보였다”며 “정밀 암 치료의 새로운 전략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Cancer Research(미국암학회 공식 저널)에 지난달 1일자로 게재되며 국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