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여행기
산타 뉴스는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 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 대장정 15500Km, 중국을 보다>, <물속에 쓴 이름들, 손호철의 이탈리아 사상 기행>, <카미노 데 쿠바: 즐거운 혁명의 나라 쿠바를 가다> 등 역사기행 책을 쓴 정치학자 손호철 서강대학교 명예교수의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번 여행기는 지난 7월 손 교수가 지상의 낙원인 ‘샹그릴라 ’이자 세계 최장수 마을인 파키스탄의 훈자계곡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이라는 카라코룸하이웨이로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건너 위구르족의 고향인 중국의 신장에 이르는 오지를 다녀온 여행기다.
그의 여행기를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연재한다.
훈자가 샹그릴라라고 하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향’만은 아니다. 훈자는 다른 파키스탄지이성을 잃은 '광기의 한국정치'에 생긴 마음의 상처를 비상계엄과 이후 ‘내전’으로 생겼던역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힌두교가 지배하다가 불교가 흥행했고 이슬람세력이 이 지역을 지배하며 이슬람으로 변했다. 특히 이곳은 이슬람의 비주류인 시아파(이란의 지배세력)의 온건파가 많이 살고 있다.
1000년 된 시아파 전통마을은 ‘전통문화를 잘 보존한 마을’로 2000년대 들어 두 차례나 유네스코로부터 상을 받은 곳이다. 마을로 들어서자, 빙하가 녹은 비치빛 연못 뒤로 설산이 보이고 나무 사이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모스크의 탑이 보이는 것이 한 폭의 그림이다. 오래된 옛 단칸방 모스크 등 전통적 가옥들이 이채로웠지만, 이 마을에서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이들이었다. 연못에서 다이빙과 물놀이를 하는 어린 소년으로부터 매 순간 변하는 천 개의 표정으로 반드시 배우를 해야 할 예쁜 소녀와 동생들을 보고 있자, 이성을 잃은 '광기의 한국정치'에 생긴 마음의 상처들이 잠시나마 사라져 버렸다.



훈자도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훈자는 지리적 고립성 때문에 오랫동안 독립된 왕국으로 지내왔다. 그 흔적은 설산 밑에 세워진 발티드성이 잘 보여주고 있다. 14-15세기 세워진 이 성은 1950년대까지 이 지역을 지배해 온 왕이 거주하던 왕궁이자 군사요새로 해발이 높은 만큼 그곳으로 오르는 언덕길은 숨이 턱까지 찼다.


성으로 들어가자 제일 먼저 나타난 것은 감옥이었다. 일찍이 학생운동으로 감옥을 들락날락했던 개인사도 있고 해서 이를 바라보는 느낌은 각별했다. 훈자에도 ‘국가의 억압성’은 예전했던 것이다. 영국은 제국주의적 평창 속에, 특히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세계지배전략으로 1871년 훈자를 공격했다. 당시 왕이었던 미르 사프다르 알리 칸은 중국신장으로 도주했다.
성에 걸려 있는 왕들의 사진 중에는 백성들을 놔두고 혼자 도주한 그의 사진도 있다. 이를 보고 있자, 이 오지의 샹그릴라까지 쳐들어온 영국 제국주의의 탐욕과 임진왜란 때 혼자 도망길에 나섰던 선조가 생각나 갑자기 화가 났다. 영국은 도주한 왕의 동생을 허수아비 왕으로 앉혀서 훈자를 지배했다. 이렇게 계속된 훈자왕국은 이후에도 계속돼다가 1970년대 들어 파키스탄에 흡수됐다.

석양을 보기 위해 훈자마을에서 제일 높아 ‘독수리의 둥지’라고 불리는 곳으로 올라갔다. 파키스탄 현지인들로부터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에 이르기 까지 사람들이 빽빽했다. ‘키 큰 동양인’이 신기한 듯 여기저기서 사진을 같이 찍어 달라고 했다. 불행히도 구름이 많이 끼어 제대로 된 석양을 즐길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서 훈자계곡을 내려다보고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고산들을 함꺼번에 들러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훈자에서의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출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다시 4층 베란다로 달려갔다. 하지만 구름이 가득해 일출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예전 같으면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달려와 새벽같이 일어났는데, 구름때문에 제대로 사진도 못 찍다니!”하고 쌍욕을 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언제부터인가 지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자연히 허용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을 배우게 됐다. 인살랴(‘신의 뜻대로’라는 무슬람의 관용어)! 오늘의 흐린 날씨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기가 막힌 일출사진을 찍게 해준 어제의 맑은 날씨가 고맙게 느껴졌다.
방으로 돌아가려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2층 식당 야외테라스에 새벽 다섯 시의 이른 시간임에도 접시를 세팅하고 있는 종업원이 있어 사진을 찍었다.
날씨 때문에 자연을 제대로 못 찍었지만 그 덕에 인간을, 인간의 고귀한 노동을 엿볼 수 있었다.
나의 여행은, 아니 나의 여행도 이들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숨은 땀방울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흐린 날씨가 깨우쳐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