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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토마토의 친척이었다”…수백만 년 전 진화의 비밀 밝혀져

산타뉴스 류 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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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와 야생 식물의 자연 교배가 만든 덩이줄기 식물의 탄생

야생 식물 ‘에투베로숨’과 토마토의 만남이 낳은 진화의 기적
기후 위기에 대응할 새로운 품종 개발의 열쇠 될까

글로벌 식탁 위에 빠지지 않는 감자. 튀기면 감자튀김, 으깨면 매시포테이토, 볶으면 반찬. 하지만 이 일상적인 작물이 사실은 자연의 장대한 진화 실험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감자는 어디서 왔을까?

 

감자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남미 안데스 산맥 일대에서 인류에 의해 처음 재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이전, 감자의 기원이 정확히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오랫동안 학계의 수수께끼였다.


식물의 경우 동물과 달리 화석으로 보존되기 어렵고, 외형만으로는 유전적 조상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과 영국의 연구진은 수년간의 공동 연구를 통해, 감자 유전자를 깊이 분석하고 계통을 추적했다. 중국농업과학원, 런던 자연사박물관, 에든버러왕립식물원 등 여러 기관이 참여한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Cell을 통해 그 성과를 발표했다.

감자의 ‘부모’는 누구였나

 

연구팀은 감자 450종 이상, 그리고 그 근연 식물들의 "유전체(genome)"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먹는 감자는 약 900만 년 전, 토마토와 "에투베로숨(Etuberosum)"이라는 야생 식물이 자연스럽게 교배하며 탄생한 식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두 식물은 모두 가지과(Solanaceae)에 속하는 종으로, 공통 조상에서 약 1,400만 년 전 갈라져 각자의 진화를 이어왔다. 그러다 기후 변화나 지리적 이동으로 인해 두 종이 같은 지역에 자라게 되었고, 벌이나 곤충 등의 수분 활동을 통해 유전자가 뒤섞이는 자연 교배가 발생했다.

그 결과 새로운 식물이 탄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줄기에서 영양을 저장하는 ‘덩이줄기’(tuber)를 가진 감자였다.

 

유전자가 결정한 ‘감자의 몸’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받은 부분은 유전자 조합의 정교함이다.

토마토로부터 물려받은 SP6A 유전자는 식물이 줄기를 덩이줄기로 바꾸도록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에투베로숨에서 유래한 IT1 유전자는 줄기의 성장 방향을 바꾸고, 뿌리 아래쪽에 에너지 저장소를 만드는 유전자 신호를 보낸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식물의 유전자가 결합하여 감자 특유의 덩이줄기 구조를 만들었고, 그것이 오늘날 식량 작물로서 감자를 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이는 식물 진화사에서 매우 독특하고, 고도로 적응된 사례로 평가된다.

 

병충해에 약한 감자…새로운 돌파구 될까

 

오늘날 감자는 쌀, 밀, 옥수수와 함께 세계 4대 식량 작물 중 하나다. 전 세계 수십억 인구가 섭취하는 필수 식품이지만, 감자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유전적 다양성 부족이다.

 

대표적인 예가 아일랜드 대기근은 감자의 유전적 단일성과 병충해가 불러온 참사였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를 주식으로 삼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감자의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해 병충해에 매우 취약했고, 결국 1845년부터 시작된 감자역병(Potato Blight)이 전국적으로 퍼지며 대규모 흉작을 초래했다. 기근의 영향으로 약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고,  당시 아일랜드 인구의 20~25%가 감소했으며  또 다른 수백만 명은 미국 등지로 이주했다. 감자 외에도 밀과 옥수수 등 곡물이 있었지만, 대부분 영국으로 수출되어 아일랜드인들은 먹을 것이 없었다

 

감자는 씨앗이 아니라 "덩이줄기(씨감자)"로 번식되기 때문에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유전 정보가 거의 그대로 전달된다. 이로 인해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이 약하고, 기후 변화나 전염병에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열었다. 감자의 조상 유전자 구조를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씨앗 번식 감자 품종 개발, 병해충 저항성 강화, 가뭄 등 기후 변화에 강한 작물 개량이 가능해진 것이다.


수백만 년의 우연, 인류의 미래를 바꾸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단순히 감자의 기원을 밝힌 것을 넘어, 생명 진화의 우연성과 정교함이 만든 기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또한 “과거 자연의 유전자 조합이 현재 인류의 식탁을 만들었듯, 오늘날의 유전학이 다시 한번 인류의 생존 방식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강조했다.

류 재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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