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힙한 장소는 박물관?”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인파로 들썩이고 있다. ‘오픈런’이라 불리는 개장 전 대기 행렬은 평일·주말을 가리지 않고 길게 이어지며, 입장 대기줄은 이촌역 에스컬레이터부터 박물관 앞마당까지 이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가족 단위 나들이객부터 외국인 관광객, 커플, 학생 단체까지 다양한 관람객들이 몰리며, 박물관은 명실상부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특히 올해 상반기(1~6월) 박물관을 찾은 입장객은 270만889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64% 증가했다. 이는 2005년 용산 이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로, 단순한 일회성 붐이 아닌 문화 소비 패턴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다.
‘전통+디자인’의 변신… 뮤지엄 굿즈가 힙하다
폭발적인 관심은 전시 자체를 넘어, 이른바 ‘뮷즈(뮤지엄+굿즈)’라 불리는 문화상품에도 집중되고 있다. 박물관 내 뮤지엄숍에는 관람을 마친 방문객들이 몰려들며 인기 상품은 연일 품절을 기록 중이다.
특히 방탄소년단 RM이 구입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술을 따르면 얼굴이 빨개지는 ‘취객 선비 잔’, 전통 단청 무늬를 접목한 ‘단청 키보드’, 영화 속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까치호랑이 배지’ 등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뮷즈 매출은 약 115억원으로, 작년 대비 34%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부산에서 온 한 가족 관람객은 “딸이 까치호랑이 배지를 갖고 싶어했지만 품절이라 아쉬워했다”며 “박물관이 이렇게까지 사람들로 북적일 줄 몰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 조나단 씨는 “케이팝 콘텐츠와 전통문화를 함께 접할 수 있어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SNS 세대, ‘감각적 경험’을 찾아 박물관으로
박물관의 변신은 단지 외형적인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전통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해낸 전시 구성과 콘텐츠가 MZ세대를 중심으로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사유의 방’처럼 단 하나의 국보를 고요한 공간에 집중시켜 전시하는 방식은 감각적 몰입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취향과 맞닿아 있다. 일본에서 온 한 관람객은 “무료 전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한 연출”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SNS와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짧고 강렬한 경험’을 선호한다”며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박물관 콘텐츠는 국내외 소비자에게 신선하고 감각적인 문화 소비의 대안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힙’한 문화의 중심이 된 박물관
지금의 박물관은 더 이상 ‘조용히 보는 전시’에 머물지 않는다. 문화상품, 체험형 콘텐츠, 미디어아트 전시, 어린이 전용관 등 다층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구성된 국립중앙박물관은 가족 나들이, 연인 데이트, 외국인 관광, SNS 인증 장소로까지 진화했다.
K팝과 드라마, 웹툰을 통해 세계가 주목한 K컬처의 뿌리를 따라, 이제는 전통문화도 ‘새로운 감각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박물관을 ‘지루한 공간’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곳은 이야기가 있고, 굿즈가 있고, 경험이 있으며, 무엇보다 지금 가장 ‘힙한’ 장소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