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외국 법인도 양벌규정 적용 대상”…국내 형사재판권 첫 확정

국내 기업 기술보호 강화 신호탄…외국 기업도 법 앞에 동일 책임
대한민국 대법원이 외국 법인도 불법 행위와 연루될 경우 양벌규정 적용을 받아 국내 형사재판에서 처벌될 수 있다는 판단을 처음으로 내렸습니다. 이번 판결은 외국 기업에 대해 한국 법원이 형사재판권을 직접 행사한 첫 사례로, 향후 국내 산업기술 보호와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중요한 기준점이 될 전망입니다.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최근 산업기술보호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대만의 LED 제조업체 에버라이트에 대해 벌금 6천만 원을 확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행위지가 국외라 하더라도 국내 기업의 산업기술과 영업비밀을 침해한 이상 대한민국의 재판권이 미친다”며 원심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전직 직원 영업비밀 유출…외국 기업까지 함께 기소
사건의 발단은 국내 LED 선도기업인 서울반도체 전직 직원 3명이 퇴사 후 에버라이트에 입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들은 서울반도체에서 근무 당시 보유했던 핵심 산업기술과 영업비밀을 무단으로 열람·촬영해 해외 경쟁사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검찰은 기술 유출 과정에서 외국 기업이 직접 이득을 본 점을 들어, 단순히 개인의 불법 행위로 한정하지 않고 에버라이트 법인 자체도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며 기소했습니다. 이에 따라 에버라이트는 한국 법정에 서게 됐습니다.
에버라이트 “국외 행위에 한국 재판권 미치지 않아”…법원 “책임 동일”
에버라이트 측은 재판 과정에서 “행위가 외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한국의 형사재판권이 인정될 수 없다”며 강력히 다퉜습니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물론 대법원 역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국내 산업기술과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것은 국경을 초월한 법익”이라며 “외국 법인이라도 해당 행위로 국내 기업이 피해를 입혔다면 당연히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이는 양벌규정의 적용 범위가 국외 기업에도 확장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천명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국내 산업기술 보호와 법적 의미
이번 판결은 단순히 한 기업의 처벌을 넘어, 대한민국이 자국 산업기술과 영업비밀을 지키기 위해 외국 기업에도 강력한 법 집행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외국 기업이 한국 기술을 빼내려는 시도에 제동을 거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입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앞으로 국내 기술 유출 사건에서 해외 기업이 연루된 경우, 이번 판례가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며 “기업 차원에서도 영업비밀 관리와 해외 파트너십 체결 시 법적 위험을 철저히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관련자 형사처벌도 확정
한편, 기술을 유출한 전직 직원 3명은 수원지법에서 일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일부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습니다. 이로써 개인의 형사 책임뿐 아니라 외국 법인의 법적 책임까지 함께 확정되면서 사건은 종결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