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의사제가 시행된다

의대 가려면 이사부터 — 지역의사제가 만든 ‘10대의 이동’
지역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도입된 지역의사제(지역의사 선발전형)가 정작 지원 자격을 맞추기 위한 ‘학생·가정의 지방 이전’을 촉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의료취약지 등 지역 필수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2027학년도부터 제도를 본격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지역에서 뽑아, 지역에 남게
지역의사제의 핵심 설계는 단순한 ‘정원 배정’이 아니라 지역 출신(또는 일정 기간 해당 지역에서 수학한) 학생을 별도 전형으로 선발하고, 의사면허 취득 후 장기간(예: 10년) 지정 지역에서 의무복무하도록 하는 구조다.
논리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수도권 쏠림이 심화되면서 지역의 의료 접근성과 필수·응급의료의 신뢰가 무너지고 있고, 사람을 보내도 금방 떠난다는 한계를 제도적으로 막아보자는 것이다.
정부·언론 보도에서 반복되는 근거는 지역 격차다. 예컨대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울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7명인 반면 경북 1.4명, 충남 1.5명 수준으로 격차가 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자격 기준 — 중·고부터 그 지역에 거주해야
문제는 지원 요건이 지역 거주에 그치지 않고 ‘중·고 전 과정을 해당 지역에서 이수’ 같은 조건으로 설계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자 일부 가정에서는 의대 진학을 목표로 한다면 지금 이사해야 한다는 계산이 등장했다.
경기도에 살던 중2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아이 장래 희망이 의사라서 제도가 시작되면 고교 진학 전에 의료취약지로 주소를 옮겨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말한다.
지방 소도시의 원룸에서 주말 가족 형태로 생활하거나, 학생만 전학 보내는 사례도 주변에서 들린다는 것이다. 또 다른 수험생은 ‘지역 전형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자격을 만들기 위해 이동하는 건 마음이 복잡하다’고 털어놨다.
이런 움직임은 역설적으로 제도의 취지인 지역에 뿌리 둔 인재를 길러 남게 하자는 것과 충돌한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학생에게 기회를 주자는 전형이 오히려 입시 목적의 이전을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필수의료의 지속가능성 실험
그럼에도 순기능은 분명하다.
첫째, 지역 의료인력의 예측 가능성
장학금·전형·복무를 연계하면, 적어도 일정 기간은 지역 병원·의료원에 인력이 고정된다. 정부는 2027년부터 5년간 지역필수공공의료 인력 양성 규모를 제시하며 정책 패키지로 추진 중이다.
- 둘째, 지역 출신 학생의 사회 이동 사다리
의대 진학이 수도권·상위권 학교에 편중될수록 지역 학생의 박탈감이 커지는데, 별도 전형은 지역 인재에게 통로가 될 수 있다. - 셋째, 공공의료·응급·필수 분야의 최소 인력확보
시장 논리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영역에 제도적 장치를 둔다는 의미가 있다.
의무복무만으론 해결 어려움
의료계와 현장에서는 역기능을 강하게 경고한다.
- 첫째, 구조적 문제를 건드리지 못한 채 10년 근무 강제로 귀결
의료계는 지역의 위기가 단순한 의사 수가 아니라 응급·중증 치료가 가능하다는 신뢰, 장비·인력·소송 리스크, 정주 여건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런 기반 없이 의무복무만 걸면 현장 적응과 숙련이 필요한 필수의료의 중추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 둘째, 거주 이전·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위헌 소지) 논쟁
장기간 의무복무를 면허 제재 등과 결합할 경우, 기본권 침해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 셋째 - 어디가 대상 지역인가 형평성 논란
최근에는 적용 지역 선정 기준을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정부는 의료취약지 지정 기준에 따른 것이라며 변동 가능성은 낮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하지만 생활권이 맞닿은 인접 지역 간에도 왜 저기는 되고 우리는 안 되느냐는 민원이 생길 수 있고, 학생·학부모의 이전 전략을 더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 넷째, 의무복무 이후 재이탈 문제
10년을 채운 뒤 수도권으로 이동하면 장기적 지역 정착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회의론이 꾸준하다.
전형보다 근무할 만한 지역을 먼저 만들라
정책 전문가와 현장 의사들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키워드는 패키지다.
지역의사제가 효과를 내려면 다음의 네 가지가 필요하다.
- 1. 지역 필수의료 인프라 투자(장비·중환자·응급 체계)
- 2. 의료사고·소송 부담 완화와 안전장치
- 3. 지역 정주 여건(주거·교육·배우자 일자리) 지원
- 4. 지역수가·보상체계 강화
같은 조건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의무복무를 걸기 전에, 그곳에서 일해도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입시 목적의 이전을 최소화하는 정교한 요건 설계다.
중·고 전 과정을 강제하기보다 지역 연고를 다층적으로 인정하거나(거주 기간+가족 기반+학교 이수 등), 지역 고교·지자체·의료기관이 연계된 장기 멘토링/장학 트랙을 만들어 진짜 정착으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지역의사제는 사람을 묶는 제도가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제도여야
지역의사제는 지역 의료 격차라는 구조적 문제 앞에서 나온 강한 처방이다.
그러나 제도가 강할수록 부작용도 선명해진다. 학생의 지방 이전이 ‘입시 전략’으로 확산되는 순간, 제도의 정당성은 흔들릴 수 있다.
결국 승부처는 의사를 붙잡는 규정이 아니라, 의사가 남고 싶어지는 지역을 만드는 것이다.
지역의사제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단독 해법이 되긴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