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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와 분열의 시대, 인문학의 부활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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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을 이어가는 마음의 언어
시민 속으로 들어간 인문학은 작은 변화의 시작이다. 

 

 

• 갈라진 사회를 잇는 힘,   인문학의 귀환


■ 균열의 시대, 공감이 사라진 사회

 

‘말이 통하지 않는다.’

 

요즘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가장 큰 한숨이다. 정치 성향, 세대, 직업,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단정하고 단절한다. 인터넷 댓글창에는 혐오와 분노가 넘쳐나고, 일상의 대화조차 진영 논리에 갇히기 일쑤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회적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20대는 공정을, 50대는 안정을, 70대는 추억을 말한다. 
서로의 언어가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 기술의 발전보다 더 절실한 것은  사람의 이해

 

4차 산업혁명, AI, 빅데이터.
기술이 세상을 빠르게 바꾸지만, 정작 사람의 마음을 잇는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극화의 근본 원인은 인간의 감정적 단절이라며, 인문학적 회복력(humanistic resilience)의 부재를 지적한다.

 

인문학은 단순한 교양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철학은 서로 다른 관점을 조율하게 하고, 문학은 타인의 감정을 체험하게 하며, 역사학은 공동체의 기억을 되살린다. 다시 말해, 인문학은 사회를 하나로 잇는 공감의 언어를 제공한다.

 


■ 시민 속으로 들어간 인문학, 작은 변화의 시작

 

최근 전국 곳곳에서 인문학을 통한 사회 회복 프로젝트가 확산되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은 마을 인문학프로그램을 통해 청년과 노년층이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는 시간을 운영한다. 


경남의 한 도서관에서는 매주 인문학 산책을 열어 지역주민이 철학자, 시인과 직접 토론하며 사회문제를 나눈다.

 

참여자들은 입을 모은다.

‘정치 얘기를 하면 싸우지만, 문학을 이야기하면 서로 웃어요.’
‘다른 세대와 대화하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처음 알았어요.’

이처럼 인문학은 이념의 벽을 낮추고 공감의 회로를 복원하는 사회적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 인문학, 민주주의의 마지막 방파제

 

인문학은 단순한 개인의 교양을 넘어 민주사회의 근간을 지탱하는 힘이다.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고, 다름 속에서 의미를 찾는 능력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 대학의 사회철학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정치는 제도를 바꾸지만, 인문학은 마음을 바꾼다. 제도는 갈등을 조정하지만, 마음의 변화가 없다면 분열은 되풀이된다.’

 

그의 말처럼 인문학은 민주주의가 기능하기 위한 시민의 내면적 기반이다.
사유하고 질문하는 시민이 많을수록 사회의 대화는 깊어지고, 단절의 벽은 낮아진다.

 


■ 인문학적 상상력이 만드는 미래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려는 상상력이다.
기계는 효율을 높이지만, 인문학은 관계를 회복시킨다.


AI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은 더욱 소중하다.

한 청년 독서모임 회원의 말이 인상 깊다.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어요. 진짜 문제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를 몰랐던 우리의 마음이더라고요.’

이 시대의 인문학은 지식이 아니라 공감의 기술, 소통의 윤리,그리고 존중의 문화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 다시 사람을 공부해야 할 때

 

양극화와 분열은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의 실패다.


사회 통합의 해법은 경제정책 이전에 사람을 이해하는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인문학은 오래된 학문이지만, 오늘날 그 어떤 기술보다도 혁신적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다시 잇는 공존의 언어이자, 무너진 신뢰를 복원하는 마음의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시급히 배워야 할 과목은 경제학도, 데이터 과학도 아니다.
바로, 사람학(人學) — 인문학이다.

 

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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