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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신(新) 르다이트 정신

산타뉴스 남철희 칼럼
입력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새로운 저항의 역사

19세기 초, 영국 산업혁명의 한복판에서 일하던 직조공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의 파도를 맞았다. 증기기관과 방직기가 등장하며 수백 년간 숙련된 장인의 손기술로 유지되던 직조 산업이 순식간에 기계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기계는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그러나 그 속도는 노동자의 삶을 무너뜨렸다. 일자리는 사라지고 임금은 반토막이 났으며, 숙련 노동의 자부심은 ‘쓸모없는 기술’로 치부되었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일어섰다. 그들은 새로운 기계를 부수며 저항했고, 그 운동은 ‘르다이트(Luddite) 운동’으로 기록되었다. 

이름의 유래는 전설적 인물 ‘네드 르드(Ned Ludd)’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이다.


그들의 분노는 단순히 ‘기계를 미워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고, 인간의 존엄이 효율성 아래 짓밟히는 세상에 대한 항의였다.

 

■ 200년 후, 다시 돌아온 기계의 그림자

 

21세기의 우리는 또 다른 기술혁명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번엔 방직기가 아니라 인공지능(AI) 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AI는 단순한 노동뿐 아니라, 창작, 판단, 감정, 심지어 인간의 언어까지 학습하며 인간의 고유 영역을 빠르게 침범하고 있다.


AI가 그리는 그림이 전시회에 걸리고, AI가 쓴 뉴스가 포털을 채운다. 번역가, 작가, 디자이너, 심지어 법률 전문가나 의사마저 AI의 경쟁 상대로 떠오른다.


과거 직조공들이 기계 앞에서 느꼈던 두려움이, 이제는 지식 노동자와 창작자에게 전이된 셈이다.

 

르다이트 운동이 ‘기계를 부순 운동’으로 폄하되듯, 지금의 AI 비판 역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퇴보적 태도”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다시 묻자.
우리가 진정 거부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인가, 아니면 인간의 통제와 윤리를 상실한 기술의 남용인가?

 

■ 신(新) 르다이트 정신은 ‘거부’가 아니라 ‘균형’

 

‘신 르다이트 정신’은 단순한 반(反)기술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중심의 기술 발전, 윤리적 사용, 그리고 공정한 보상 구조를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 저항이다.


AI 시대의 노동자는 기계를 부수는 대신, 데이터의 사용권과 창작물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AI 학습 데이터로 무단 수집되는 현실에 맞서 “데이터 저작권”을 외치고 있다. 

교육자들은 학생들이 AI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지키려 노력한다. 

기업과 정부도 이제는 기술 확산보다 윤리와 책임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즉, 신 르다이트 정신은 과거의 폭력이 아니라, 지성적이고 제도적인 저항이다.
기술의 속도를 인간의 가치가 따라잡지 못할 때,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산업혁명을 통해 배운 바 있다.

 

■ 인간을 위한 AI, 그것이 궁극의 기술 진보

 

AI는 인간의 적이 아니다. 문제는 AI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철학에 있다.
AI가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도, 반대로 인간의 존재 가치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결국 기술의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윤리적 선택이다.

 

“AI 시대의 신 르다이트 정신”은 기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넘어설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조율하려는 사회적 본능이다.


기술의 진보가 곧 인간의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이 변화의 속도 속에서 인간은 여전히 주인인가?”

AI생성 이미지

 

■ 결론: 저항은 두려움이 아니라 성찰이다

 

르다이트 운동은 실패한 반란으로 끝났지만, 그들의 외침은 20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울려 퍼진다.


AI 시대의 인간은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섰다.
기술을 숭배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두고 기술을 다스릴 것인가.

 

‘신 르다이트 정신’은 그 선택의 한가운데서 태어나고 있다.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성찰의 저항이며,두려움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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