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 핸들 잡은 그녀들

“핸들 잡은 그녀들” 시내버스 여성기사 늘어나는 이유는
새벽 4시 30분,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서울의 한 버스 차고지. 형광 조끼를 입은 기사들이 차량 점검에 분주한 가운데 운전석에 오르는 여성 기사들의 모습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과거 남성 중심 직업으로 여겨졌던 시내버스 운전 분야에 여성들의 진입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버스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여성 버스기사 채용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동변속기 차량 확대와 근무환경 개선, 그리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경력 전환 수요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한다.
과거 대형 시내버스는 수동변속기 차량이 많아 체력 부담이 컸다.
잦은 기어 변속과 장시간 운전은 여성들에게 높은 진입 장벽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저상버스와 전기버스 도입이 확대되면서 대부분 자동변속기로 바뀌었고, 조향 장치 역시 크게 개선됐다.
운전 피로도가 줄어들면서 여성 기사들의 도전이 자연스럽게 늘어난 것이다.
실제 서울의 한 버스회사에서 근무 중인 40대 여성 기사 김모 씨는 “예전에는 버스 운전이 힘으로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지금은 훨씬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직업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의류 디자이너로 개인 브랜드를 운영했지만 경기 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사업을 접었다. 이후 생계를 고민하던 중 대형면허를 취득해 버스 운전에 뛰어들었다.
김 씨는 “처음엔 주변에서 ‘여자가 어떻게 버스를 모느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지금은 승객들이 더 친절하게 대해주는 경우가 많다”며 웃었다.
특히 노약자 승객이나 학생 승객들에게 세심하게 대응하는 여성 기사들의 장점이 현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부 버스업체 관계자들은 여성 기사들의 사고율과 민원 발생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고 평가한다. 급가속이나 난폭 운전이 적고 승객 응대가 부드럽다는 이유에서다.
한 운수업체 관계자는 “서비스업 성격이 강한 대중교통 특성상 여성 기사들의 강점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여성 버스기사 증가는 우리 사회의 직업 인식 변화와도 연결된다.
과거에는 특정 직군을 남성과 여성의 영역으로 구분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안정성과 전문성을 중심으로 직업을 선택하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경기 불안과 조기 퇴직 증가 속에서 새로운 기술을 익혀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여성들도 많아졌다.
전문가들은 여성 운수 종사자 확대가 단순한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변화의 상징이라고 분석한다.
노동사회연구 분야의 한 전문가는 “과거 여성들이 주로 사무직이나 서비스직에 집중됐다면 이제는 운송·기술 분야까지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며
“자동화와 기계화가 직업의 성별 장벽을 허물고 있는 대표 사례”라고 설명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새벽·심야 근무 부담, 화장실 등 여성 편의시설 부족, 일부 승객의 편견은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다.
하지만 업계는 여성 기사 전용 휴게공간 확대와 근무 환경 개선 등을 통해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거대한 시내버스를 능숙하게 몰며 도심을 누비는 여성 기사들.
이들의 등장은 단순한 직업 변화가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와 노동의 풍경을 보여주는 새로운 상징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