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 선행과 도전으로 길을 연 고려아연 최창걸 명예회장
위기마다 나눔과 성실로 길을 만들고, ‘사람 중심 경영’으로 산업의 본보기가 되다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사진제공 고려아연]](https://santanews.cdn.presscon.ai/prod/140/images/20251007/1759792507912_631475043.png)
가난했던 시대, 산업 기반조차 없던 나라에서 한 사람이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믿음으로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갔다.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그는 단지 제련소를 세운 기업인이 아니라,‘선행으로 세상을 녹인 사람’이었다.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끊임없는 도전과 따뜻한 나눔의 연대기로 남았다.
■ 없는 것투성이에서 시작한 첫 도전
1970년대 초, 자본도 기술도 없던 한국은 ‘비철금속 불모지’였다.
최 명예회장은 그 절망의 한가운데서 “우리 손으로 해내자”고 외쳤다.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를 직접 찾아가 사업비를 깎고, 높은 마진을 요구하는 해외 건설사를 거절했다.
“남의 손으로는 배울 수 없다”며, 직접 공사를 맡았다. 그 선택은 모험이었지만 결국 성공이었다.
4500만 달러로 완공한 제련소는 기술의 씨앗이 되었고, 이후 50년 동안 고려아연은 세계 1위로 성장했다. 그는 말없이, 그러나 단단하게 보여줬다.
“도전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람을 믿는 일”이라고.
■ 위기 속에서도 ‘사람을 먼저’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수많은 기업이 사람을 내보내던 시절에도 그는 “우리 회사는 가족”이라며 단 한 명의 구조조정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의 손을 잡고 “지켜야 할 건 공장이 아니라 사람”이라 했고, 그 믿음은 38년 무분규와 102분기 연속 흑자라는 기적으로 돌아왔다.그의 경영철학은 단순했다.
“기업의 성장은 결국 사람의 성장에서 시작된다.”
■ 주는 것보다 ‘길을 함께 걷는’ 선행
그의 나눔은 보여주기식 기부가 아니었다.
1981년 명진보육원을 시작으로, 수많은 학교와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보내며 ‘물고기를 주지 말고, 잡는 법을 알려주라’는 철학을 실천했다.
임직원들에게도 급여의 1%를 기부하도록 제안하며 ‘작은 나눔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 움직임은 지금까지 이어져 고려아연의 대표 사회공헌 캠페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따뜻한 손길은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지역과 사회 전체로 번져나갔다. “머리에 든 재산은 잃지 않는다”는 아버지 최기호 초대 회장의 뜻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어간 셈이었다.
■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현장의 유산’
장남 최윤범 회장은 아버지의 말을 이렇게 기억한다.
“책상보다 현장에 답이 있다.”
그 가르침은 지금도 살아 있다. 고려아연은 그린 수소, 2차 전지, 자원 순환 등 미래 산업으로 나아가며 ‘선한 기술’로 세상을 돕고 있다.
그가 남긴 길은 단지 경영의 기록이 아니라,사람이 사람을 일으킨 이야기다.
■ “끝까지, 따뜻하게 나아가라”
병상에서도 그는 회사를 걱정했다. 동료의 이름을 부르고, 직원의 안부를 묻고, “오늘도 잘하고 있나”를 되뇌었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말처럼, “조금 늦어도 된다. 단, 따뜻하게 가라.”
그 말은 오늘날 수많은 후배 기업인과 청년들에게
‘성공보다 사람’을 기억하게 하는 문장이 되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20호실,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 거행된다.
그의 인생은 불모지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완성된 이야기였다.
오늘 우리는 한 경영인을 떠나보내지만,그가 남긴 ‘따뜻한 철학’은 여전히 세상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