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탄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펜, 기자의 숭고한 사명

가자지구는 지금 전쟁터이자 동시에 기록의 현장이다. 포연 속에서도 카메라를 세우고, 잿더미 위에서도 마이크를 들던 기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폭격으로 기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으면서, 진실을 증언할 목소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알자지라 방송의 아나스 알샤리프 기자는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 앞 천막에서 취재 중이었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전쟁의 참상을 전하고 있었지만, 이스라엘군의 드론 공습으로 현장에서 숨졌다.
이스라엘군은 그를 “하마스 조직원”이라 주장했으나, 그는 끝까지 펜과 카메라로 진실을 기록한 언론인이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증언의 창구가 닫힌 사건이었다. 24일에는 남부 칸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서 더 충격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공습으로 부상자가 발생하자 구조대와 취재진이 몰려들었고, 이때 다시 두 번째 폭격이 가해졌다. 일명 ‘더블탭(double-tap)’ 전술이었다.
이 공격으로 AP와 로이터, 미들이스트아이(MEE) 소속 기자 5명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려던 이들이 오히려 폭격의 표적이 된 것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닌, 언론을 겨냥한 폭력으로 국제사회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브라운대 왓슨 국제공공정책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2023년 10월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가자지구에서 숨진 언론인은 무려 247명에 달한다.
이는 제1·2차 세계대전, 6·25 전쟁, 베트남전,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사망한 종군 기자들의 합계보다 많은 수치다. 한 달에 10명 이상 언론인이 희생되는 셈이다. 이처럼 기록을 남기려는 기자들의 발걸음이 끊기면서, 전 세계는 참상의 실상을 알 수 있는 마지막 창구를 잃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카메라를 들고, 노트북을 열고, 위험 속으로 들어간다.
이는 단순한 직업적 의무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양심을 지키려는 숭고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언제나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기자들의 기록은 그 허구를 드러낸다. 기자가 없었다면 우리는 가자지구의 현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고, 희생자들의 목소리는 끝내 역사 속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기자가 쓰러져도 기록은 남는다. 펜이 꺾여도 진실은 이어진다.
이제 남겨진 우리의 몫은 그들의 기록을 단순한 뉴스로 소비하지 않고, 역사와 기억으로 새기는 일이다.
언론인들의 희생은 저널리즘의 위기이자 동시에 인류의 책임이다.
총탄 속에서 꺼지지 않는 펜은, 인간 존엄을 지키려는 최후의 불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