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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연구원이 던진 경고…재생에너지 전환, 속도보다 ‘신뢰의 설계’가 먼저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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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사태가 흔든 에너지 시장, 그리고 늦춰진 전환의 리듬
해상 풍력 단지의 모습 [사진제공 나무위키]
해상 풍력 단지의 모습 [사진제공 나무위키]

2026년 4월, 중동 사태로 석유·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산업연구원은 재생에너지 전환이 오히려 둔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 맞물리며 자본 집약적인 재생에너지 투자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진단이다. 바람과 햇빛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사람들의 선택은 잠시 흔들렸다.


같은 시기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에너지 안보의 해법으로 제시했다. 방향은 분명하지만, 시장은 비용과 위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숫자가 말하는 현실…한국은 아직 ‘전환 이전 단계’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약 10% 수준이다. 전력의 약 90%는 여전히 석탄과 가스, 원자력에 의존한다. 지난 10년간 설비는 빠르게 늘었지만, 에너지 구조 자체를 바꾸기에는 부족하다.


지금까지의 재생에너지는 ‘대체’가 아니라 ‘추가’에 가까웠다.


산업 중심 경제에서 전력 수요는 계속 증가해 왔다. 재생에너지는 기존 에너지를 밀어내기보다, 늘어난 수요를 보완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여기에 금리 상승까지 겹치며 구조적 한계는 더 선명해졌다.


 

테슬라 수퍼차저 [사진제공 나무위키]
테슬라 수퍼차저 [사진제공 나무위키]

전기차 화재가 남긴 질문…전환은 ‘안전’ 위에서만 가능하다


최근 전기차 화재 사고는 또 다른 변수로 등장했다. 발생 빈도 자체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높지 않지만, 한 번 불이 나면 진압이 어렵고 재발화 가능성이 있어 위험 인식이 크게 확산됐다.


일부 주거시설에서 전기차 주차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충전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 기술적 사실보다 체감 위험이 시장을 흔드는 전형적인 장면이다.


전기차는 재생에너지 전환의 핵심 수요처다. 이 축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전환 속도 역시 영향을 받는다. 정책과 투자가 유지되고 있음에도, 시장은 이전보다 더 신중해지고 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와 수용성


재생에너지 확대를 가로막는 것은 기술 부족이 아니다. 태양광과 풍력은 이미 충분히 상용화 단계에 있다. 문제는 이를 지탱할 시스템이다.


전력망은 여전히 부족하고, 저장과 송전 능력도 제한적이다. 입지 갈등과 환경 논란은 반복된다. 여기에 안전에 대한 사회적 신뢰까지 더해져야 한다.


결국 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수용성의 문제다. 얼마나 빠르게 늘리느냐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속도 경쟁이 아닌 설계의 문제


산업연구원의 분석은 단순하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수요 자체를 관리하는 구조 전환이 병행돼야 한다.


전력망 투자, 에너지 효율 강화, 대중교통 확대, 전기차 안전성 확보. 이 요소들은 각각의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이다. 하나라도 흔들리면 전환 전체가 지연된다.


속도를 높이는 정책보다, 전력망과 안전 기준을 먼저 설계하는 일이 지금의 우선 과제다.


전환의 조건은 결국 ‘신뢰’다


재생에너지는 분명 미래다. 그러나 그 미래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비용, 인프라, 그리고 사회적 신뢰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


지금 한국의 에너지 전환은 갈림길에 서 있다. 더 빠르게 가는 것보다, 더 안정적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다. 바람과 햇빛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 남은 것은 그것을 믿고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성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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